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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창작

목숨 내놓고 산 시절

2022.04.15



                목숨 내놓고 산 시절  


 오선생님은 이제 70대 중반에 이르렀고 생활이 이제 완전히 안정권에 들어섰기에 예전과는 달리 매년 한국에도 한 번씩 나가 한 달 정도 머물며 여기저기 구경도 다니고 친척이나 친구들도 만나곤 하신다. 예전에는 꿈도 못 꾸던 생활이다. 이제야말로 말 그대로 ‘사람답게 사는 생활’을 즐기게 된 것이다 40여년 전 20대 중반의 나이로 무작정 미국에 건너왔을 때 남은 돈은 손에 달랑 20불 뿐이었다. 예전에 조금 배우다 때려 친 태권도가 처음 왔을 때 그나마 입에 풀칠하게 해주는 기술이 될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한인관장이 운영하는 태권도 도장의 보조사범으로 일하며 숙식을 도장 내에서 해결했고 시간나는 틈틈이 인근주유소에서 총잡이(주유원을 당시 이렇게 불렀다한다)를 해 모자라는 생활비를 충당하곤했다. 


인근지역은 죄다 흑인들과 남미계 사람들 뿐이어서 백인구경하기가 어려운 거친 지역이었지만 이것저것 가릴 처지가 아니었다. 당시만 해도 흑인이나 맥시칸들은 한국 사람이라고 하면 죄다 태권도 고수라고 믿는듯했다. 시비를 걸어오다가도 태권도 폼을 잡으면 주춤하고 물러나곤 했다한다. 태권도 도장에서는 숙식해결이 되었지만 임금은 아주 형편없어 용돈 정도도 되지 못했다. 주유소 총잡이가 유일한 수입원이었지만 그나마 많은 시간을 주지 않아 목돈 만들기가 어려웠다. 이러던 중 한인이 운영하던 동네 리커스토아에서 사고가 났다. 밤늦은 시간에 2인조 권총강도가 들어 스탁 일하던 맥시칸 1명과 케시어에 앉아있던 흑인여자 1명이 한꺼번에 살해되는 큰 사고였다. 이사고 여파로 인근 리커스토아에서 한동안 직원구하기가 어려울 때 오선생에게도 기회가 왔다. 


풀타임 정규 JOB을 잡은 것이다. 주인은 사고가 난 인근에 리커스토아와 생선튀김가게를 운영하는 한국노인이셨다. 지인의 소개로 처음 영감님을 만나 소위 인터뷰를 했는데 노인의 첫 질문이 “목숨 걸고 돈 벌 각오는 돼있어?” 였다 한다. 리커스토아의 경우 밤늦은 시간부터 문 닫기 직전시간이 제일 위험한 시간대여서 이시간대에 리커에서 일하려는 사람이 드물어 사람 구하는데 애를 먹는데 주로 이시간대에 일을 줄 텐데 괜찮냐는 질문이었던 것이다. 이것저것 가릴 처지가 아니어서 “죽기 아니면 살기죠! 돈버는게 쉽나요?” 라고 자신있게 답변했다. 이곳에서 5년 동안 365일 휴일도 없이 일을 했다. 다행히 사고는 없었고 매니저로 승진도 했다. 매니저가 된 후에도 365일 휴일도 없이 다시 5년을 보냈다. 


돈이 어느 정도 모이자 드디어 10년 만에 독립을 할 수 있었다. 영감님이 적극 지원해주어 아주 작은 리커스토아를 하나 인수할 수 있었고 영감님이 다운패이 자금의 70% 정도를 대고 오선생이 나머지 30%를 대고 직접 운영하는 동업형태로 시작했다. 그러면서 매달 얼마씩 수입금에서 영감님 돈을 갚아 나가는 형태로 몇 년 뒤에는 완전히 자신의 가게로 만들 수 있었다. 15년 만에 이루어낸 쾌거였다. 이사이 결혼도 했고 아들도 하나 얻었다. 세상 모든 것을 다 얻은 듯 뿌듯했다한다. 그런데 이 가게는 흑인 동네 중에서도 아주 험하다는 OO지역에 있어 항시 마음을 놓을 수가 없었다. 방탄유리 안에 숨다시피해서 계산을 해야 했고 어떤 놈이 물건을 슬쩍 들고 계산도 없이 나가도 쫓아나가지도 못하고 방탄유리 BOX안에서 소리소리 지를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아주 사소한 물건을 들고 나가면 손해를 감수하고 말아야 했지만 돈이 꽤 되도록 물건을 훔쳐 갈 때는 위험하지만 샷건을 들고 방탄 BOX밖으로 나와 제지해야만했다. 


이럴 때는 피가 마르고 머리털이 곤두섰다. 재미있는 사실은 이 동네 사는 흑인들중에 한국을 잘 아는 흑인이 꽤나 많다는 점이였다 주한미군으로 한국을 다녀온 녀석들이 많아서 곧잘 한국말로 인사를 하곤 했는데 주로 하는 인사말이 욕이었다. “XX노무아~” “하이 야안칼보우~” 등 저속어들이 많았는바 아마도 동두천 등지에서 양갈보하던 이들과 살림을 하거나 사귀었던 관계로 이들이 장난삼아 욕을 인사말로 가르킨듯했다. 어떤 짖궂은 놈은 강아지를 안고 와서 요리법을 알려달라고 하며 놀리기도 했다. 오선생은 가게가 어느 정도 안정되자 부모형제들을 한국에서 불러들였고 온가족이 이 가게에 매달려 목숨을 걸다시피했다. 


온 식구가 똘똘 뭉쳐 일하고 악착같이 돈을 모아 가게 하나를 더 OPEN 해서 형제 중 한명이 맡고 또 이 두 가게에 식구들이 목숨걸고 매달려 돈이 모이면 또 하나 가게를 OPEN 해서 또 다른 형제가 맡는 식으로 다섯 형제자매가 결국 모두 하나씩의 가게를 얻어 독립할 수가 있었다. 이렇게 정신없이 일하면서 모두가 보험을 들었다했다. 식구 중 누구 하나가 총 맞아 죽으면 생명보험금 타서 나머지 식구라도 이 위험한 짓 때려치우고 편하게 살자는 비장한 약속을 하고서 그 위험한 세월을 견디어냈다는 것이다. 한번은 가게 안에서 깽단끼리 총격전이 벌어져 가게 안에, 또 가게 입구에 시체가 널린 적도 있었다고 한다. 끔찍하고 살 떨리는 이런 위험 속에서도 가게는 365일 단 하루도 문을 닫은 적이 없었다. 


죽고 사는 것은 운명에 맡기고 오로지 돈 버는 데에만 목숨 건 세월이었다. 오선생님은 이런 세월 속에 형제들 다 먹고 살 수 있게 해주었고 부모님도 편히 모셨다. 물론 부모님도 거동이 불편하지 않을 때까지 가게에 매달렸던 것은 물론이다. 아버지는 연로하여 돌아가셨고 100살이 다되신 노모는 오선생님이 지금도 모시고 산다. 한인타운에 APT도 한 채 장만하였고 한국에다가 집도 한 채 사놓았다. 오선생님이 갑자기 생각이 바뀌어 좀 여유있게 살게 된 계기는 미국에 와서 사귄 둘도 없이 가까운 동갑내기 친구가 갑자기 심장마비로 사망하면서 부터였다. 비슷한 처지에 같은 업종에 종사하던 친구였고 미국생활에서 유일하게 속을 터놓을 수 있는 친구였다. 


이 친구도 자신처럼 너무도 성실하게 열심히 살아왔는데 어느 날 갑자기 세상을 떠버린 것이다. 죽도록 일만하다가 벌어놓은 돈 한 푼 써보지도 못하고 세상을 하직한 친구가 가여워 몇날 며칠을 울다가 사람이 바뀌었다. 좀 여유있게 쓰면서 인생을 즐기기로 한 것이다. 참 좋은 결정이었다. 


자료제공:  GU DO  WON  (철학원)

213-487-6295, 213-999-0640

주소: 2140 W. Olympic  Blvd #224

Los Angeles, CA 90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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