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음의 평안을 구하는 기도”
미국인 교회에서 목회를 한지 20년이 넘었지만, 미국인교인들이 자기 개인 이야기를 목사에게 하는 것은 드문 것 같다. 개인적인 이야기를 하면 목사와 가까와 질 수도 있지만, 괞히 약점이 잡혀 불편해 질 수도 있으니, 대부분의 교인들은 목사에게 속에 있는 고민을 터놓고 얘기를 하지 않는 것 같다. 그러다 보니 몇 년을 알고 지내는 교인들도그저 피상적인 관계에 머무르다가, 그 교회를 떠나면 그 피상적인 관계마저 끝나는게 보통인 것 같다.
그런데, 병원에서 파트타임 채플린으로 일하다 보면, 환자들이나 환자의 가족들과 나름 의미있는 대화를 나눌 기회가 있어 병원목회에 보람을 느낄 때가 있다. 며칠전에는 병실을 방문하여 환자에게 나를 소개하며 어떤 일로 입원하게 되었는지 물어 보았다. 중년의 여자환자는 “코로나 바이러스”에 걸려 입원했다고 했다.
다행히, 요즘은 코로나 바이러스에 걸렸다가 쉽게 났는 추세이기 때문에 나는 그 환자에게, “우리 교회 교인들이 코로나 걸렸다가 다 낫더군요. 너무 염려 마세요. 곧 나으실 겁니다. 저의 집사람도 코로나 걸렸다고 회복이 되었습니다. 제가 기도를 해 드릴까요?”하고 물었더니, 그러라고 해서 회복을 위한 기도를 해 주고 병실을 나왔다.
다음 병실에 들어가서 할머니 환자에게 “병원 채플린인데, 잠시 방문해도 되겠느냐?”하고 물었더니 할머니는 환하게 웃으며 반갑게 맞아 주었다. 나보고 의자에 앉으라고 하더니, “마실 것 뭘 대접할까요? 커피 드실래요?”하고 말을 하길래, 좀 의아해 했는데, 이어서 하는 말이 더 이상하게 들렸다. “여기는 내 집이 아니고, 우리 여동생 집인데 내가 잠시 머물고 있다.”고 했다.
나는 그 분의 말에 장단을 맞추어 주고 입을 다물었어야 했는데, 입이 근질근질해서 바른 말을 해 주었다. “이 방은 여동생 집이 아니고, 병원 병실인데요.” 그랬더니, 할머니는 머쓱해 했다. 아마도 손님에게 커피를 내어 줄 줄 아는 뇌의 기능은 가동하고 있었지만, 일부 뇌의 손상으로 병실을 여동생집으로 혼동한 것은 아닐까 짐작했다. 사무실에 도착하여 환자의 챠트를 열어보니, 아니나 다를까 알츠하이머 병이 있는 환자라고 나와 있었다.
우리 어머니는 87세로 뇌출혈로 쓰러져 요양병원에 10일 정도 계시다 돌아 가셨는데, 혼수상태에 있던 어머니에게 내가, “엄마, 내가 누군지 알겠어요?” 물었더니, 어머니는 의식이 없는 상태에서도, 반사적으로 대답하시는 말씀이, “잘 모르겠습니더.”라고 했다. 내가 다시, “엄마, 미국에서 정래 왔어.” 하니, 어머니는 의식도 없이 “정래왔어”라는 말을 따라하던 것이 신기하게 생각되었다. 뇌지주막하 출혈로 뇌의 기능을 대부분 상실했지만, 일부 반사신경은 남아 있지 않았나 생각된다. 의식이 없으면서도 “정래왔어”라는 말을 마지막으로 남기고 하늘나라로 가신 어머니가 그립다.
다음 병실에 갔더니, 60초반의 백인 여성이 밝은 표정으로 나를 맞아 주며 말했다. “지난 11 월에 췌장암이 발견되어 암치료를 시작했다. 이제 첫 손녀도 보았고, 암을 이겨내고 손녀랑 좋은 시간을 보내고 싶다.”고 했다. 그러면서 나에게, “동양인 같은데, 동양에서 암에 도움되는 신기한 비술이 있으면 알려 다오.”라고 했다.
나는 “물에 빠진 사람이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은 동서양이나 같구나 생각하며, 환자에게 “동양의 비법인 내공에서 나오는 신비한 장풍을 불어 넣어 주겠다”고 하며 장풍을 불어 넣는 돌팔이 사기행각은 할 수 없었고, 췌장암으로 돌아가신 우리 큰 자형과 둘째 누님, 그리고 내 동기 이목사를 떠 올리며, “미안하지만, 내가 아는 췌장암 걸린 사람은 대부분 죽더군요.”라는 말도 해 줄 수 없었다.
대신에, “현대의학이 제공하는 최고의 치료를 받으시고, 긍정적이고 낙천적인 정신자세를 유지하시는게 도움이 된다 합니다. 나머지는 하나님의 뜻에 맡기고, 하루 하루 감사하며 최선을 다해 사셨으면 합니다.”하고 위로와 용기, 마음의 평안을 비는 기도를 드리고 병실을 나왔다.
다음 병실에 들어 갔더니, 환자 할머니가 병실 안에 있는지 좌변기에 앉아 있길래 무안하지 않도록 얼른 나와 버렸다. 병실 복도에 서 있는 환자의 여동생이 나한테 말했다. “언니는 72살인데 췌장암 말기로 호스피스 도움을 받으며 임종을 기다리고 있다. 우리 언니는, “나한테 이런 일이 생길 줄을 전혀 생각도 못했다.”고 하며 곧 죽게 될 자신의 운명을 안타까와 한다고 했다.
내가 아는 미국인 목사는 자신의 기도로 교인들의 암이 고쳐졌다며 좋아 했으나, 얼마 있지 않아 자신의 딸이 암으로 세상을 떠났는 소식을 교단 소식지를 통해 읽은 적이 있다. 나는 우리 교인들중에 암치료를 받고 회복된 사람도 보았고, 암치료에도 불구하고 죽는 사람들도 보았다.
기도로 모든 병이 사라지게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마는 현실은 그렇지 않다. 진정한 기도란 내 소원성취라기 보다 “내 뜻대로 마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되소서” 기도하시던 예수님의 대인배 같은 기도라고 본다. 라인홀드 니이버 교수가 “마음의 평안을 구하는 기도”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할 수 있는 용기를 주시고, 내가 할 수 없는 일은 받아 들임으로 마음의 평안을 얻게 하시고, 이 둘을 분간할 줄 아는 지혜를 주소서”하던 기도가 성숙한 기도라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