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목적인가? 돈이 목적인가?”
한국에서 살 때 농담반 진담반으로, “뭐니 뭐니 해도 머니가 최고다”란 말을 들어 본 적이 있다. 미국말에도 비슷한 말들이 있다. “Money talks.” (돈 있는 사람의 말빨이 제일 세다) “Everything hinges on money.” (모든 게 다 돈에 달려 있다.) 심지어, “The Golden Rule: Whoever Has the Gold Makes the Rules.” (황금률: 금을 갖고 있는 사람이 말하는 게 곧 법)
최근에 스페인의 테니스 스타 라파엘 나달이 사우디 아라비아로 부터 7억 5천만불의 돈을 받고, 사우디 아라비아의 테니스 홍보대사역할을 맡게 되었다는 뉴스가 있었는데, 왕년의 미국 테니스 스타 지미 코너스가 이 뉴스를 듣고, “Money changes everything.” (돈이 인성도 바꿔 버리는구나.)라는 한탄을 했다는 뉴스를 읽었다.
사우디는 왕세자가 바른 말을 하는 언론인을 암살시키고도 오리발을 내미는, 불량한 국가인데, 도덕성을 갖추어야 할 스포츠맨이 돈 많이 준다고 사우디의 국격을 높혀 주는 홍보대사 자리를 덥썩 차지하는 나달에 대해 지미 코너스는, “돈 많이 준다니, 너도 별 수 없구나. 돈 때문에 인격과 자존심도 파는 구나. 나달, 너도 한심하구나.” 그런 뜻인 것 같았다.
며칠 전에 한국의 친척집에 결혼식이 있다는 연락을 받았다. 교회에서 휴가를 얻어 두어주간 다녀올까 하다가 한국에 다녀 오려면 비행기삯과 숙식비등이 적쟎이 들 것 같아, 아쉽지만, 축의금만 보내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진주 큰 누님에게 전화 했더니, 누님도 축의금만 보내고 결혼식장에는 가지 않았다고 했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돈만 보내면 되지. 그 집사람들은 돈이 목적이지 사람이 목적이 아니다.”라는 말을 했다.
미국말에 “Instead of loving people and using money, people often love money and use people.” (사람들이 사람을 사랑하고 돈은 이용해야 할텐데, 사람들은 종종 돈을 사랑하고 사람은 이용하는구나)는 말이 있던데, 한국이나 미국이나 “사람이 목적인가? 돈이 목적인가?”하는 물음에 직면하게 된다.
오늘 병실의 의자에 홀로 앉아 있는89세의 백인할머니 Grace와 대화를 나누다가 이런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Grace 할머니는 이혼을 하고 캘리포니아로 가서 37년을 살다가 십여년전에 외동아들 부부가 사는 위스칸신으로 이사를 왔다고 한다.
Grace 할머니는, “아들부부와 나는 사이가 좋지 않아 왕래가 없다”고 쓸쓸히 말했다. 89세된 어머니가 병원에 입원해 있어도, 아들부부는 찾아와 보지도 않는다고 했다. 내가 이유를 물으니, 이렇게 대답했다. “나는 아들부부보다 내 여동생과 여동생의 딸들과 더 친하게 지낸다. 그래서 내 법적인 후견인으로 내 여동생으로 정했는데, 한번은 내가 병원에 입원해 있을 때, 아들부부가 나를 방문했을 때, 나의 법적, 의료적 후견인이 아들부부가 아니라, 내 여동생이 되어 있는 것을 보고, 아들 부부는 화가 나서 그 이후로 나와 연락을 끊고 산다”고 했다.
그 할머니의 외동아들 부부는 어머니가 돌아 가시면 당연히 어머니의 재산을 물려 받을 것이라 생각했던 모양인데, 어머니가 유산처리를 아들부부가 아니라, 여동생과 조카들에게 맡겨 놓은 것에 화가 나서 어머니와의 연을 끊은 것 같았다. 우리 누님의 표현대로, 그 아들 부부는 “어머니가 목적이 아니라, 돈이 목적”이었을까?
나는 친구목사로 부터, “너는 목사가 되어서는 안될 사람이 목사를 하고 있다. 너는 먹고 살기 위해, 돈벌이의 수단으로 목사를 하고 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나는 가난하게 커서, 부자는 아니더라도, 가난을 벗어나 중산층의 삶을 살고 싶어 목사를 하고 있기 때문에 친구목사의 말이 틀린 말은 아니다. 나는 늦게사 철이 들어, 한푼이라도 절약하고, 한푼이라도 더 벌어 보려고 노력하는데, 이게 바로 물욕에 사로잡힌 목사가 아닌가 불안할 때가 있다.
그래서, 나는, 나와 달리, 순수한 목적으로 목회 하는 목사님들을 존경한다. 가령, 요한 웨슬레 목사님은 “Earn as much as you can. Save as much as you can. Give as much as you can.” (가능한 한 많이 벌고, 가능한 한 많이 저축하고, 가능한 한 많이 나눠 주라.)고 하시면서, 자신은 검소하게 살면서, 가난한 사람들에게 많이 나누어 주는 삶을 살았다고 한다. 나는 언제 돈에서 자유로운, 요한 웨슬레 목사님 같은 삶을 살 수 있을까?
어렸을 때 동네에서 친구들과 해가 질 때까지 구슬 따먹기 놀이를 한 적이 있었다. 예쁜 구슬을 하나라도 더 따려고 눈에 불을 키고, 구슬 따먹기를 하고 있는데, 동네 친구 만규는 우리와 좀 달랐다. 만규의 어머니가 “만규야, 저녁밥 준비 되었으니, 밥 먹으러 오너라.”하는 말을 듣자, 만규는 우리 쪽을 쳐다 보며 씩 웃더니, 자기가 하루 종일 모은 구슬들을 우리 쪽으로 던져 버리며, “너희들 다 가져라”하고는 웃으며 어둠속으로 사라져 갔다. 트럭 운전을 하시던 만규의 아버지가 만규가 구슬을 집으로 들고 오는 것을 싫어 해서, 만규가 겁을 먹고 구슬을 던져 버린 것인지 어쩐지 모르지만, 비범하고 해탈한, 만규의 웃던 모습이 오십년이 지난 지금도 잊혀 지지 않는다.
물욕에 눈이 멀어 있던 우리들에게 만규는, “나는 물욕에서 해방되었다. 나는 자유다. 보아라. 내 만면에 있는 환한 웃음을!”이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나는 언제, 만규처럼, 더 움켜쥐려 하고, 더 갖지 못해 안달하는 이 물욕을 던져 버리고, 해방감과 해탈감으로, 자유롭고, 환하게 웃을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