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인생의 석양을 맞을 때”

2024.08.24

                                                         조정래 목사의 세상사는 이야기


                                                            “인생의 석양을 맞을 때”


며칠전에 호스피스 환자인 89세의 백인 할머니 매럴린을 방문한 일이 있었다. 연세가 많으신데, 머리 숱이 수북하게 많아 의아하게 생각했는데, 할머니는 유방암 말기로 항암치료 후유증으로 가발을 쓰고 있다고 했다. 병실 창가에 중년부부의 사진이 놓여 있어 누구신가하고 물어 보았더니, 몇년전 세상을 떠난 남편과 결혼 25주년 기념으로 찍은 사진이라 했다.


남편은 한국전쟁에 공수부대 대원으로 참전했고, 제대한 후 미국에 돌아 왔을 때 친구의 소개로 만났다가 결혼한 후 우체부로 일하며 세 자녀를 키웠고, 63년간의 결혼생활을 한 후 할아버지는 치매가 발병하여 양로원에 있다가 몇 년 전 91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고 했다.


남편은 한국전쟁에 참전하여 어쩔 수 없이 사람들을 죽여야 했던 일에 대해 마음 아파 했다 한다. 매럴린 할머니는 남편에게, “적을 죽이지 않으면, 당신이 죽을 수도 있었으니, 어쩔 수 없지 않느냐?”고 위로해 주었다고 한다.


말기암으로 호스피스 환자인 매럴린 할머니는 곧 병원에서 나가 할아버지가 돌아 가신 그 양로원에 들어가 죽음을 맞이해야 한다고 했다. 자녀 셋이 있지만, 자녀들도 손주들이 있을만큼 나이들이 많고 타주에 살기 때문에, 할머니는 요양병원에 가서 혼자 죽음을 맞이해야 한다며 쓸쓸히 말했다. 


나는 매럴린 할머니에게, “인생을 열심히 사셨으니, 아무 염려 마시고, 사랑의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겨 드리고, 편안히 계시다 영생복락의 하늘나라로 가시길 바랍니다.”하는 위로의 인사밖에 할 말이 없었다.


오후에는 중환자실 간호사로 부터 중환자실의 환자 방문을 해 달라는 연락을 받고 중환자실에 가 보았다. 간호사는 1622병실에 있는 72 되신 할머니가 곧 퇴원하여 집에 가서 임종을 맞아야 하는 상황인데, 환자에게 위로의 말과 임종기도를 해 주라고 했다. 병실에 들어 가니 아직 정신이 또렷한, 앙상한 모습의 백인 할머니, Sharon이 기도를 해 달라고 했다. 


나는 Sharon할머니에게, “어떤 의미에서, 우리는 하늘나라에서 이 세상을 구경하러 온 천사들입니다. 할머니는 이제 인간세상 구경을 마치고, 이 세상에서의 고통과 슬픔에서 벗어나, 자유롭고 행복한, 하늘나라의 천사가 될 것이니, 아무 염려 마시고, 평안한 마음을 가지세요. 할머니는 하나님의 자녀이니, 하나님이 잘 보살펴 주실 것입니다.”고 말했더니, Sharon 할머니의 눈가에 눈물방울이 맺혔다.


가까이에 티슈가 없어서, 내가 손등으로 눈물을 닦아 주니, 할머니는 내 손에 입을 맞추며 “Thank you, Sir!”라고 했다. 그 할머니는 집으로 옮겨가 죽음을 맞게 되니, 그 할머니와는 이 세상에서의 마지막 작별 인사였다.


또 한 젊은 암환자 병실을 방문해 달라는 간호사의 전화를 받고, 병실에 가 보았다. 병실에는 중년의 남자와 10대 후반으로 보이는 여학생이 병상에 누워 있는 40대중반의 여환자를 안타깝게 쳐다 보며 위로를 해 주려고 노력하고 있었다. 남자는 환자는 자기 아내인데 뇌종양 수술을 받은, 호스피스 환자라고 했다. 환자는 머리의 반을 삭발하고, 머리에는 두뇌수술 바늘 자국이 있었고, 환자의 얼굴은 두려움으로 굳어 있었다. 남편이 “아내는 두뇌 종양 수술을 받았으며, 호스피스 환자”라고 내게 말하자, 환자는 불쾌한 표정으로, “I can beat this!” (나 반드시 암을 이겨 낼 거야!)하며 의지를 불태웠다.


그러자, 남편은 무안해 하며, “그래, 함께 이겨내자. 옥시랑 각시랑 싸우더라도 같이 오래 살자. 당신이 우리 집안의 정신적 지주야. 힘내!”라고 했다. 옆에 있는 딸은 심각한 표정으로 말없이 서 있었다.


나는 환자의 살려는 의지에 찬물을 끼얹기 싫어, “이 환자가 기적같이 회복되기를 기도한다”고 했지만, 가짜 희망을 주어 희망고문을 하는 사이비 목사가 되기가 싫어, “살던지, 죽던지, 주님의 뜻을 따름으로 마음의 평안을 주소서.”하는 기도를 덧 붙이고 병실을 나왔다.


기도로 암을 고칠 수 있다고 허위광고를 하거나, 물에 빠진 사람이 지푸라기라도 잡으려는 심정으로 얼마 남지 않은 귀한 시간과 돈을 낭비하며, 암이 기적적으로 나으리라는 한 가닥 희망을 부여 진 채 죽는 것 보다, “인명재천”이니, “하늘이 부르면 담담히 가겠다”는 슬기와 용기를 갖고, 남은 시간과 돈을 뜻있는 데 쓰고, 즐겁게 살다가 저 세상으로 훨훨 날아가겠다”고 마음 먹는 게 낫다고 본다.


어떤 사람은 암으로 몇 달 못 산다는 의사의 말을 듣고도, 40년 이상 살아 있다는 신문 기사도 있으니, 암이 걸렸다고 다 죽는 것은 아니니 쉽게 희망을 포기해서도 안되겠지만, 암으로 죽는 사람들 또한 많으니, 미국말에 “Hope for the best, Prepare for the worst.” (최선의 상황을 희망하지만, 최악의 상황에도 준비하라”는 마음자세를 가져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좋아요
태그
인기 포스팅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