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플라즈마 (혈장액) 기증해 본 이야기”

2025.04.09

                                       조정래 목사의 세상사는 이야기 (April 9, 2025)


                                              “플라즈마 (혈장액) 기증해 본 이야기”


한국에 살 때 동네 뒷 동산에 올라 공동묘지를 바라 보다가 이런 생각이 들었던 적이 있었다. 내가 죽어서 공동묘지에 묻힌다면, 공동묘지에 누워 있는 내가 뒷동산에 올라 와 있는 나에게 이런 말을 해 주는 상상을 해 보았다: “야, 살아 있을 때 하고 싶은 일을 해. 죽으면, 아무 것도 못해. 죽으면 영혼이 설사 있더라도, 영혼만으로는 손가락 하나 까딱 못해. 몸 뚱아리를 갖고 있을 때, 가고 싶은 곳 가보고, 먹고 싶은 것 먹고, 하고 싶은 일 하다가 여기에 들어와.”


나는 몸뚱아리가 묘지에 묻혀서 꼼짝 못하고 답답하게 지낼 생각을 하니, 살아 있을 때 몸을 움직여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이 큰 행운이요 특권으로 느껴 졌다. 그 뒷동산에서 “죽기전에 미국에 가 봤으면” 하는 상상을 하다가, 실제로 미국에 와서 산지 벌써 33년이 되었다. 살아 있을 때 다양한 인생체험을 하며 살고 싶다.


고등학교 시절 어느 날 적십자사에서 간호사들이 와서 학생들의 헌혈을 받는다고 했다. 헌혈을 한 학생에게는 빵과 우유를 준다고 해서, 나는 호기심반, 빵과 우유를 먹고 싶은 마음 반 해서, 헌혈을 한 기억이 난다. 미국에 와서도 헌혈을 몇 번 했는데, 한국에서 맞았던 간염예방 주사의 흔적이 있으므로, 내 피는 헌혈용으로 쓸 수가 없다는 말을 듣고 헌혈을 못하게 되었다.


그런데 몇 달 전 내가 우버 운전일을 할 때 흑인 청년 승객이 나에게 플라즈마 센터에 데려다 달라고 했다. 나는 “플라즈마 센터가 뭐 하는 곳이냐?”고 물었더니, 그 청년은 “피를 뽑아서 피 속에 있는 플라즈마(혈장액)라는 성분을 빼내는데, 플라즈마를 제외한 나머지 피는 몸속에 도로 넣어준다.”고 했다. “몸에는 지장이 없고, 처음 플라즈마를 기증하는 사람은 한달에 $800 벌 수 있다”고 했다.


나는 그 말을 듣고, 플라즈마를 기증해 보기로 했다.  플라즈마 센터에 도착해 보니, 흑인들과 가난한 백인들이 플라즈마를 기증하기 위해 줄을 서 있었다. 나는 플라즈마 기정 서약서에 서명을 하고, 건강검진을 받은 후 침대에 누운 후, 정맥 혈관에 꽂힌 관을 통해 피를 뽑았다.


맥주병 한 병 정도의 플라즈마를 뽑아낸 후, 나머지 피는 내 몸속으로 다시 넣어 질 때 좀 차가운 느낌을 받았으나, 별 탈없이 플라즈마 기증을 마치니, 내 스마트 폰의 앱에 돈이 입금이 되어 있었다. 그래서 일주일에 두번, 한달에 여덟번을 플라즈마를 기증했더니, 800불을 지급 받게 되었다. 공돈으로 800불이 생겨서 이 돈으로 무얼할까 생각해 보다가, 밀와키 퍼블릭 골프장 일년회비 내는데 보태기로 했다. 말하자면, 나는 “피를 팔아서 골프비용을 댄 사람”이 되어버린 것이다.


여덟번 기증하고 난 후 그만 할까 하다가, 몸에 이상이 없고, 한시간 동안 드러 누워 편히 쉬다가 오면 돈을 50불씩 주니, 다시 플라즈마를 기증해 보기로 했다. 


다른 수입이 없어서 생활비를 벌기 위해 플라즈마를 팔아야 하는 형편이었다면, 마음이 서글펐을텐데, 인생경험 삼아 재미로 플라즈마를 기증한다고 생각하니 여유 있는 사람의 사치로 여겨졌다.


지금까지 16번의 플라즈마를 기증했는데, 플라즈마를 뽑기 위해 침대에 누워 있는 시간이 나에게는 커리비안 해변의 야자수 밑에서 누워서 쉬는 휴식 시간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플라즈마를 기증하고 나오면 용돈이 앱에 차곡차곡 쌓이니, 용돈 부자가 되는 것 같았다. 그렇게 플라즈마 기증에 재미를 붙이고 매주 플라즈마 센터에 갔는데, 한번은 점심을 안먹고 갔더니, 내 피검사를 하던 직원이, “오늘은 혈액에서 수분이 부족하여 (dehydrated) 플라즈마를 뽑기에 적절한 몸 상태가 아니니 다음에 오세요.”라고 했다.


다음에 갈 때는 물을 많이 마시고 이번에는 이상이 없겠지 하고 갔더니, 이번에는 “피 속에 단백질 성분이 부족한 것으로 나와서, 플라즈마 기증 자격이 없습니다. 다음에 단백질을 충분히 드시고 단백질이 충분한지 검사한 후 통과되면 다시 기증하세요.”라고 했다.


그래서 나는 “잘 되었다. 이 기회에 실컷 먹자”하고 한국식품점에서 사 왔던 두툼한 삼겹살에다 김치를 볶아서 실컷 먹고, 닭고기와 계란도 실컷 먹고 가서 검사를 했더니, 합격이라는 통지를 받고 다시 플라즈마를 기증하게 되었다.


플라즈마는 혈우병 환자의 약을 만드는데 쓰인다고 하며, 플라즈마를 기증하러 가면, 혈압과 맥박, 혈액검사를 공짜로 해 주며, 거기서 일하는 직원들도 만나고, 플라즈마를 기증하러 온 흑인, 백인들과 함께 드러누워 “이렇게 한 세상 같이 살다가 가는 구나” 하는 생각을 하며 쉬다가 용돈 받고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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