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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어머니 손길

2020.11.14


그렇케 먼길 여행은 

68 평생 처음 이라 하셨다

몇날 몇일을 걸어서 가신  6.25 피난길 도 비할바가 못됐다 하셨다.

생전 처음 타보시는 비행기도 두렵거니와

어디다 데려다 놓는지 겁이나서 한동안 코트 주머니에 넣은 양손이 땀으로 젗어 있었다 한다.


거울앞 에서 참빗으로 쓸어내리고 분단장하면 백옥 같았든 어머니 가  

쭈글스런 천상 노인으로

큰 아들 찿아 이곳 동부로 이민 오셨다.

우리 모두가 격어야 했든 이민의 쓴맛을 어머니라고 피할수가 있었겠는가.

꼬박 꼬박 적어 네려간 일기장에  언듯언듯 가슴 저린 귀절들이 나타난다.


떠날때 처분한 화분 값이 집 반채값 이 넘게 보유한  꽃마니아 이시였다.

KBS 주최 매년 치루는 덕수궁 국화 전시회에 출품 작이 금상을 2번 획득한

한국 국화 1인자 이시였다. 

미국오실 때 국화 10종을 손수건에 물적시어 비닐 주머니에 담고 오셨다.

애지중지 화분에 싹을 내려놓코 오하이오 딸집에 달포가량 가 계신 동안 

내가 비료를 잘못주어 폭싹 다죽여 놓았다.


어머니.

어떻하지.. 다 죽었어..


할수 없지 안냐?

국화 키우는 일 ... 중 노동이다.

나이도 그렇코  힘 버겨워질듯 히니 그만 하라는 뜻이다.


다행히 원예잡지사 를 뒤져 일본 사람이하는 국화 7종을  사서 

국화 집을 만들었다.

가을이면 이웃들이와서 국화마당을 보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한시라도 움직이지 않코는 못 배기시는 어머니  

다운타운 은행 가로수길 에 떨어진 은행 10 여개를 주워다가

분에 싹을 튀워 기르시 었다.

분재를 좋아하는 내겐 실생 분재소재로 이용할수 있었다. 

분갈이와 전지를 한지 벌써 30년이 넘는 고수 은행 분재가 됐다. 


오신길 보다 월씬 먼 길을 따나신지도 어언 15년이나 흘렀다.

해마다 낙엽젗어 흐터질 무렵이면 온통 샛노란 모습으로 나타나는 어머니손길

올해도 지난세월과 다름없이 변치않는 모습으로 찿아오셨다.


누가 나의 어머니 모습을 이어 나갈른지

아들들 가운데??????

손자손녀 들 가운데???? 


금빛광채 나는 은행잎 곱디곱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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