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사는곳 다 있을법한 일 이지만
평생을 돌아보면
살아나가면서 꽤나 차별도 당하기도 했지만 차별 하기도 한것 같다.
56년에 충청도 시골에서 국민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로 중학교를 진학 했다 .
입학 하자마자 얻어진
촌놈 이란 차별 딱지는 졸업 할때 까지 울러 메고 다녀야 했다.
바로 어눌한 충청도 억양 때문에 아무리 빠른 행동을 해도 말이 이상한 애 라하며 차별을한다,
집안 사정이 무척 힘든처지라 상급 학교 진학은 엄두도 못냈지만 용기를 잃치않고.
낯엔 학비 를 벌기 위해 뛰어다니고 밤엔 야학을 다니며 얻은 소위 말하는 2류 대학졸업장은
내게 있어서는 황금같이 소중한 것이였었다
이것도 잠깐
세상사 다그런지 기울어진 운동장에 서있는 나를 용케도 알아보고
3류대접을 하며 차별을 한다.
그나마 집안 경제라도 여유가 있으면 보템이 됏을 텓대
이또한 4류니 남이 차별하기전에 나스스로가 차별을 할수밖에 없었다.
정말 열심히 살아 기반을 제법 구축하니 이런 저런 차별이 없어지는듯 했는데
나도 깜짝 놀랐다
내가 남을 대단히 차별 하고 있다는것을
출신, 학벌, 문벌,경제력,등 내세우며
마치 고됀 시집살이 며누리가 못됀 시어머니가 돼듯이
내가 그렇케 당하며 서러워 했든 그런 부분 에서 더욱 차별을 하고 있는것이다.
구부러진 마음을 바로 세우고
동등 한 입장으로 대하도록 노력을 해보았다..
모두 평평한 운동장에서 서있는것처럼
처음엔 하나의 문화로 매김한 흐름을 거스르기에 부딛힘도 많았지만
조금씩 변화를 가져다 준다..
아주 먼 세월전에 넘어온 미국 땅
도움이 절실해 앞뒤 처다볼 겨를이 없어서 그랬는지
백인 사회에 살면서 그흔하다는 인종 차별은 눈에 보이질 않았다.
친절하게 도와주니 모두가 천사같고 고맙기만 했다.
내가 한국에서 듣든 차별이 많은 나라가 안인듯 했다.
도리어 한국이 더많은 차별을 하는 나라가 않인가 생각 했다.
백인 중산층 노년 가정을 방문하며 하는 사업 이기에
한국전 에 참여한 veterans 들을 자주 만 났다
그들 머리엔 항시 극한 추위에서 굶주리고 있는 한국인 들을 생각한다.
참 어렵고 못살때 를 전해준다.
그래도 그들은 나를 차별하지 안는것 같았다.
도리어 이런일 을 하는 기특한 동양인 으로 보아주니 감사하기까지 했다.
이들의 차별 기준은 잘살고 못사는데 있지않코 다른데 있는듯 한데
아직 까지도 잘 모르겠다.
물론 개중엔 차별하는 사람도 많이 있으리라 본다.
매스콤에 대서 특종돼는 인종간의 갈등을 볼라치면 두렵게까지 느껴지지만
내가 직접 당하질 않해서 그런지 모르겠다.
어떤때는 나도 유색 인종에 색안경을 들이대는것 처럼..
차별의 기준 이 무엇 이든지간에
차별은 선입감에서 나오는듯하다.
실제 를 접하기전에 먼저 판단 하고 구분한다.
대단히 잘못됀 시작이다.
세상 별의 별 사람 많다.
그러나 우리 모두 똑같은 인간이다.
여기서 시작할때 오류를 범하지 않는다.
차별이 없는 세상은 불가능하지만
나는 그래도 미국이 더좋다
다른 나라들보다는
차별이 적기때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