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발 좀 가만히만 있어줘!
강선생 부부와 인연이 닿은 것은 10여년 전 부터이다. 강선생 부인은 약사이고 강선생은 굳이 갖다 붙이자면 사업가이나 매냥 하는 일이 신통치 못했고 귀가 얇아 이사람 저사람 말만 믿고 이런저런 사업을 수도 없이 벌렸지만 매번 돈만 까먹고 부인 속만 시꺼멓게 타게 했다. 처음 필자가 강선생의 사주팔자를 보고 건넨 첫마디가 “선생께서는 오로지 부인 덕에 얹혀사는 팔자이니 부인 말을 잘 들어야합니다. 허나 고집이 쎄서 지금까지는 그렇게 지내지 못한것 같습니다. 부인 속 깨나 썩이셨겠습니다.” 였다. 이 소리를 옆에서 듣던 강선생 부인은 얼굴에 화색이 돌며 “맞습니다. 선생님 어쩌면 그렇게 잘 아세요? 이이가 내 말을 안듣고 사업한답시고 갖다버린 돈이 한 두 푼이 아닙니다. 제 말만 들었으면 지금쯤 빌딩 지니고 살거예요 아마!” 라고 한 반면 강선생은 인상을 확 쓰며 심통난 표정으로 아무 말 없었다.
강선생은 1963년 음력 11월 28일생으로 이른 새벽인 丑時에 태어났다. 하여 사주팔자는 癸卯年 乙丑月 庚申日 丁丑時가 되고 대운은 甲子,癸亥,壬戌,辛酉,庚申,己未로 흐른다. 庚金이 丑月에 태어나 한금(寒金)이 왕성하고 時干(시간) 丁火(정화)가 투출하여 좋은 것 같으나 무근(無根)이고 년간(年干)의 강한 癸水(계수)로부터 공격을 당하여 위태로운데 다행히도 처를 뜻하는 乙木(을목) 財(재성)인 처가 통관을 시키고 丁火를 도우니 희신(喜神)이 되었다. 따라서 처복이 있는 팔자이다. 이런 팔자를 지닌 남자는 똑똑하고 정숙한 현모양처를 두게 되는 팔자이니 처궁이 매우 튼실한 팔자이다. 허나 본인인 庚金은 모든 능력이 부족하여 재물을 갖다버리는 데에만 능하지 재물을 만들어 낼 능력은 없는 팔자이다. 이런 팔자를 지닌 이는 돈 번다고 우쭐거리며 나서지 말고 그냥 처가 먹여주는 밥이나 먹으며 가만히만 있어 주는게 도와주는 격이다.
이런 이유 때문에 처음 보는 사람한테 그렇게 심한(?)말을 해 준 것이다. 여기서 심한 말이라 쓴 것은 강선생이 필자의 사주팔자풀이를 듣더니 골이 단단히 나서 “아니 선생님께서 저를 언제 보았다고 그렇게 심한 소리를 아무렇지도 않게 하십니까? 저도 제 처에게 체면이 있는데 그런 소릴 막(?)하면 어떡합니까?” 라고 항의했기 때문이다. 듣고 보니 그런 면도 있어 보여 다소 미안한 느낌이 들었으나 원래 구도원의 상담 스타일이 상대눈치 안보고 막 내지르는(?) 스타일로 장안에 소문이 자자했기에 이런 버릇을 단번에 고칠 수도 없고 해서 다소 쑥스러운 표정으로 앉아 있었더니 옆에 부인 왈 “선생님 말씀이 하나도 틀린게 없는데 버릇없이 무슨 타박을 그렇게 해요? 그동안 당신이 내말 안듣고 사업이랍시고 벌려 갖다 버린 돈이 대체 얼만지나 알고 그런 소릴해요? 그리고 여기 와보자고 한 것도 당신이잖아요!
또 무슨 에너지절약형 전등 사업한다고 몇 달 째 나를 조르다가 내가 결사반대하니까 당신이 먼저 ‘그러면 친구에게 소개받은 유명한 역학 선생이 LA에 계시다니까 한 번 가서 물어보고 거기서도 부정적인 답이 나오면 깨끗이 포기 할테니까 가서 한 번 내 운을 물어나 보자!’ 고 해서 마지못해 와봤더니 오기를 백번 잘했네요! 선생님 하시는 말씀이 우리 처지하고 하나도 틀린게 없잖아요!” 라고 하며 남편을 탓한다. 저러다 부부싸움 붙인게 될까봐 조마조마했다. 강선생은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부모형제 복 없이 어린 시절부터 어렵게 지내야했지만 머리가 명석하여 초‧중‧고등학교를 늘 반에서 1등으로 졸업하고 명문대에 장학생으로 진학할 수 있었다.
장학금을 못 받았으면 가정형편상 고교졸업 후 진학은 포기해야 하는 처지였지만 자신이 포기하지 않고 열심히 공부하여 그런 경사를 만들어낸 것이다. 대학도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한 뒤 삼성반도체에 취직이 되었고 입사 당시에는 삼성반도체가 그리 크게 발전하지 못했으나 그 후 눈부신 발전을 하여 급여수준도 크게 늘었다. 그 때 약대 졸업반인 부인을 만나 교제하다 결혼을 하게 되었는데 결혼당시 처갓집에서 결혼을 반대하여 이렇게 저렇게 좀 시끄러웠다. 강선생 집안이 너무 한미하여 처갓집에서 강선생을 그리 탐탁치 않게 여긴 탓이었다. 내세울 것이라고는 좋은 직장에 다닌다는 것 외에 눈 씻고 찾아봐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딸이 죽자사자 고집을 꺾지 않으니 어쩔 수 없이 허락한 결혼이었다. 아마도 장인장모가 선견지명이 있었던 듯했다.
필자가 20년 넘게 이런저런 분을 수도 없이 만나보았지만 부모가 (특히 엄마)가 반대하는 결혼하고 나서 후회하지 않는 사람은 거의 찾아보기 어려웠다. 부모는 특히 엄마는 새끼를 뱃속에 넣어 탯줄로 키웠고 출산 후 물리적인 탯줄은 끊어져도 정신적인 탯줄은 자식과 연결되어 있어 자식에 대한 보호본능이 강하다. 따라서 직감적으로 어떤 사람을 보면 그 사람이 자기자식을 불행하게 할 사람인지 행복하게 해 줄 사람인지를 느낀다. 미물인 쥐새끼도 장마가 지려하면 직감적으로 위험을 느끼고 새끼들을 물어서 높은 곳으로 옮기는데 하물며 만물의 영장인 사람이야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아무튼 결혼하고 난 뒤 미국에 이민을 오게 되었고 부인은 다시 공부해서 미국에서도 약사가 되었다. 부인은 이재(利財)에 밝아 약국을 운영하면서도 틈틈이 부동산에 투자하여 꽤나 재산을 모을 수 있었다. 허나 문제는 남편인 강선생이었다.
처음 기계무역업 한다고 나서서 말아먹고 연이어 폐유 재활용사업 한다고 또 말아먹고 또 옆에서 누가 속닥거리자 운수업 한다고 나서서 또 말아먹은 뒤 ‘벼룩이도 낯이 있다’고 1~2년 잠잠하다가 드디어 또다시 나서서 에너지절약형 전등사업 한다고 나서자 부인도 더 이상은 그냥 있을 수 없어 사생결단하고 막고 나서자 강선생이 타협안으로 내세운 것이 필자를 찾아와 묻고 난 뒤 그 대답에 따라 결정하자는 취지였다. 결과적으로 강선생 입장에서는 괜한 제안을 부인에게 하고만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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