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여행

메트(19세기 - 20세기 초 유럽 회화 및 조각품 전시관)

2018.01.16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2

19세기 - 20세기 초 유럽 회화 및 조각품 전시관

메트에서 가장 인기있는 전시관은 19세기 - 20세기 초 유럽 회화 및 조각품 전시관이다.
이곳에서는 인상주의, 신고전주의, 분활주의, 낭만주의, 사실주의, 상징주의, 표현주의, 입체주의,
소박파, 파리파, 초현실주의 등 근대 화가들의 작품을 마음껏 관람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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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관 끝에는 2007년 개장한 ‘헨리 제이 하인즈 2세’ 갤러리가 자리 잡고 있다.
갤러리에는 현대 미술의 거장 ‘알베르토 자코메티’의 작품도 여러점 있다.
가늘고 긴 앙상한 뼈대의 입상은 그의 실존적 고뇌를 담은 우리 시대의 자화상이다.




알베르토 자코메티의 작품을 설명하는 메트의 큐레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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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 20세기 초 유럽 회화 및 조각품 전시관의 중요한 화가들은 다음과 같다.




피카소는 20 세기 최고의 화가로 불리우는 인물이다.
몇 년 전에도 영국의 ‘더 타임스’에서 전 세계 146 만명의 네티즌들에게 설문조사를 한 바 있다.
부동의 최고 1 위는 역시 피카소였다.
메트가 소장하고 있는 피카소의 작품은 판화,
스케치, 조각품 회화 등을 합쳐 수 백 점이나 된다.




‘라팽 아질’은 피카소가 그린 그림 때문에 유명해진 매우 유서 깊은 카바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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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리 마티스는 색채의 마술사로 불리는 야수파의 거장이다.
단순하고 아름다운 색채는 황홀하고 작품 속의 사람들은 살아서 움직인다.
‘마티스의 뱃속에는 태양이 들어있다!’
피카소가 마티스의 색채감각을 보고 한 말이다.
마티스의 색채에는 영혼이 들어 있음이 확실하다.




앙리 마티스: Odalisque with Gray Trousers(1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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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 소장품으로는 ‘에드바르 뭉크’의 작품도 두 점이 전시관에 걸려 있다.
표현주의 화가인 뭉크는 단순하고 강렬한 색채로 ‘절규’, ‘파란 옷의 여인’등 걸작을 남겼다.




뭉크의 작품: Woman in Blue against Blue Wa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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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로드 모네는 하나의 주제로 여러 장의 그림을 그린 연작을 많이 제작했다.
그 중에서도 루앙 대성당, 연꽃, 포플러 나무, 건초더미등이 유명하다.
이 작품들은 메트에서 모두 한 작품 이상씩 소장하고 있다.




클로드 모네: Water Lilies(1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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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흐의 그림은 메트에만 12점 정도 전시돼 있었다.
생전 그림이 단 한 점만 팔려 늘 가난 속에 찌들어 있던 고흐.
하지만, 그의 그림 값 만큼은 현재 천문학적 가격으로 뛰어 올랐다.
아래 작품은 우편 배달부 ‘조제프 룰랭’의 아내를 그린 것이다.




고흐: L'Arlesienne: Madame Joseph-Michel Ginoux (Marie Julien, 1848-1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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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미유 피사로는 쿠르베와 코로의 작품에서 많은 것을 배웠고,
폴 세잔과 폴 고갱에게 큰 영향을 끼쳤다.
만년에는 시력이 약화되었으나 세상을 떠날 때까지 손에서 붓을 놓지 않았다.
피사로는 인상파 화가중에서는 최고연장자로 많은 사람들의 존경을 받았다.




카미유 피사로: The Boulevard Montmartre on a Winter Morning(18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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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고갱은 후기인상파 화가로 고흐와는 아를에서 함께 지내기도 했던 인물이다.
어려서는 프랑스와 페루에서 살았으며 타히티로 건너가 말년을 보냈다.
죽기 4년전에 완성한 대작이 ‘우리는 어디서 왔으며? 우리는 무엇이며? 어디로 가는가?’ 이다.
고갱의 많은 작품들이 보스톤, 뉴욕 등 미국 미술관에 많이 전시돼 있다.




폴 고갱: Ia Orana Maria (Hail Mary(18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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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세잔은 입체파 화가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주어 근대 회화의 아버지로 불리는 화가다.
부유한 은행가의 사생아로 태어나 에밀 졸라와는 엑상프로방스에서 함께 공부하며 자랐다.
목욕하는 사람들(The Bathers)과 카드 놀이 하는 사람(The Card Players)이 유명한데
The Card Players 는 2011년,
중동의 한 왕족에게 2억 6천만 달러가 넘는 가격에 팔리기도 했다.




폴 세잔: Madame Cezanne (Hortense Fiquet, 1850-1922) in the Conserva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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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적이고 몽환적인 분위기의 그림을 많이 그렸던 오스트리아의 화가 구스타프 클림트.
매다 프리마베시의 초상은 클림트가 그린 성숙한 여인이 아닌 단 한 장의 소녀 그림이다.
매다의 부모는 클림트의 열렬한 팬이자 공방의 후원자였다고 한다.
바닥에는 물고기, 게, 고양이가 뛰놀고 9살 소녀는 두 다리를 벌린채 당당하게 서있다.
매다는 당돌하고 아름다운 여인으로 성장했을 것이다.
클림트의 대표작으로는 The Kiss 와 아델레 블로흐 바우어 부인, 유디트Ⅱ등이 있다.




구스타프 클림트: Mada Primavesi (1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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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앙 미로는 바르셀로나 출신으로 가장 초현실주의라는 평가를 받는 화가이다.
영혼이 방출하는 찬란한 광휘들을 정확히 표현하기 위해 그림을 그렸다고 미로는 말한다.
바르셀로나 몬주익 언덕에 후앙 미로 미술관(Joan Miro Museum)이 세워져 있다.




후앙 미로: Women, Birds, and a Star(1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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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귀스트 르누아르는 60년 가까이 화가로 활동하면서 약 6000여점의 작품을 남겼다.
이것은 피카소를 제외하고는 다른 어떤 화가들 보다 더 많은 작업량이다.
어려서부터 가난했고 늙어서는 병으로 고생했지만 그는 행복을 그린 화가였다.




오귀스트 르누아르: By the Seashore(18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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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에르 보나르는 마르트 드 멜리니(본명, 마리아 부르쟁)를 그 녀의 나이 16살때 만났다.
그리고는 30년 동안 동거한 후, 보나르의 나이 57세 되는 해에 결혼했다.
보나르의 작품 속에 등장하는 여성은 모두 마르트라 단정해도 결코 틀린 말은 아니다.
보나르는 80세로 사망할 때까지 색채의 신비를 탐구하여 나비파로 분류되지만,
최후의 인상주의 화가로 불려지기도 한다.




피에르 보나르: After the Bath(1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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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옹 보나는 프랑스 바욘에서 태어났지만,

젊은 시절 마드리드에서 자라고 아카데미에서 공부했다.
1854년 고향으로 돌아 온 그는 살롱전에 세 차례 출품해 모두 입선했으며,
후에 살롱전 심사위원을 지내기도 했다.
에콜 데 보자르에서는 교수를 거쳐 72세에 교장이 됐으며 89세까지 장수했다.
섬세하고 생동감있는 초상화로 유명했던 보나는 카유보트, 브라크, 로트렉 등 화가들의 스승이다.




레옹 보나: Roman Girl at a Fountain(18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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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레옹 제롬은 신고전주의 화가이자 조각가로 북아프리카, 이집트, 터키등을 여행하며 그림을 그렸다.
그가 심취했던 동방의 이국적인 분위기는 실제를 보는 듯 착각에 빠지게 한다.
바쉬-바주크( Bashi-Bazouk)는 북아프리카인으로 보이지만, 터키의 비정규 기마병이다.
오스만 제국 시대에는 약탈과 잔인함으로 유명했다.




장 레옹 제롬: Bashi-Bazouk(1868-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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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프 말로드 윌리엄 터너는 영국이 자랑하는 위대한 풍경화 화가다.
어린 나이에 영국 왕립 미술 아카데미에 입학하여 공부한 그는 날씨와 물,
변화하는 빛의 장대함을 관찰하여 독창적인 표현으로 풍경화를 그렸다.
그의 작품 The Whalers(1845)는 포경선이 고래잡는 모습을 화폭에 담은 것이다.
당장이라도 배가 뒤집힐 것 같지만, 멀리 보이는 포경선은 끄떡없다.
터너는 그림에 대한 집념과 치밀함이 대단했다고 한다.
폭풍우가 몰아 치는 날 자신의 몸을 돛대에 묶고 바다로 나간 일화는 유명하다.




조지프 말로드 윌리엄 터너: The Whalers(1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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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리 루소는 세관 관리로 파리 교외에서 한적한 생활을 하던 젊은이였다.
자연이 스승이었던 그는 그림 공부를 한 적이 전혀 없으며 독학으로 모든 것을 배웠다.
그러나 그림을 그릴 때는 심혈을 기울여 사물을 솔직하고 소박한 방식으로 그렸다.
초현실주의 선언을 발표한 작가들에 의해 루소는 초현실주의의 아버지로 불리게 된다.




앙리 루소: The Repast of the Lion(1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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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 크리스티안 달’은 노르웨이 풍경화의 아버지로 베르겐 출생이다.
30세에는 독일을 여행하다, 드레스덴에 정착해 평생을 살았다.
비록 독일로 이주는 했지만 여전히 조국을 사랑했던 그는 노르웨이를 정기적으로 방문한다.
또한, 이탈리아 나폴리와 덴마크 코펜하겐등 유럽의 여러 도시들을 돌며 그림을 그리기도 했다.
그의 개인 소장 미술품은 사후 그의 뜻에 따라 오슬로 국립 미술관에 기증됐다.
아래의 작품은 덴마크의 코펜하겐 항구를 그린 것이다.




요한 크리스티안 달: Copenhagen Harbor by Moonlight, 1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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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크 샤갈(Marc Chagall)은 러시아 출신의 프랑스 화가이다.
그가 그림을 그렸던 주제는 언제나 돌아 가고 싶은 고향과 영원한 사랑이었다.
그의 작품에서는 백마가 하늘을 날기도 하고 닭이 에펠탑에 오르기도 한다.
작품을 바라 보는 사람들은 가슴 속에 사랑을 피울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그의 작품을 전시하기 위해 설계된 ‘샤갈미술관’은 프랑스 니스에 있다.




마르크 샤갈: The Lovers(191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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움베르토 보치오니는 이탈리아 출신의 미래주의 화가겸 훌륭한 조각가였다.
1914년, 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자 보치오니는 주저없이 전쟁에 참전한다.
그리고는 전쟁터에서 돌아 오지 않았다.
34세의 나이로 전사한 것이다.
보치오니의 조각품, ‘공간의 연속성의 독특한 형태(1914)’는 20센트 유로에 새겨져 있다.




움베르토 보치오니: Self-Portrait (1989-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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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타사르 클로소프스키 드 롤라(발튀스)의 그림에서 빼 놓을 수 없는 것은 고양이와 어린 소녀의 모습이다.
발튀스는 어린 시절 ‘미추’라는 고양이를 키웠는데 어느날 갑자기 미추가 사라졌다고 한다.
그는 고양이와의 추억을 스케치로 남겼고 이 스케치는 시인 릴케를 매혹시킨다.
릴케는 서문을 써주고 책을 발간하게 했다. 당시 발튀스의 나이는 13살이었다.
그런데, 릴케는 발튀스의 어머니(화가)와는 연인 사이였다.




발타사르 클로소프스키 드 롤라(발튀스): Therese Dreaming(1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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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르주 쇠라는 신인상주의 미술을 대표하는 프랑스의 분활주의 화가다.
분활주의는 팔레트 위에서 색을 섞지 않고, 점묘로 원색을 화면에 직접 찍는 회화 기법을 말한다.
1888년에 그린 서커스 사이드쇼는 밤 풍경에 분활주의를 적용한 최초의 작품이다.
위로 아홉개의 개스등이 켜있고 악사들이 손님들을 끌어 모으기 위해 연주하고 있다.
악사와 사람들이 쓴 다양한 모자는 음악을 시각화 한 것처럼 생생한 리듬감을 느끼게 한다.
쇠라는 순회 서커스단이 파리 노동자 지역에 무대를 세운 것을 보고 스케치했다고 한다.
폴 세잔과 더불어 20세기 회화의 새로운 장을 연 쇠라는,
안타깝게도 31세의 젊은 나이로 요절했다.




조르주 쇠라: Circus Sideshow(1887-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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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리엄 부그로는 19세기 후반 프랑스의 아카데미 회화의 큰 비중을 차지하는 화가였다.
1850년에는 로마대상을 수상하고 다비드와 앵그르의 신 고전 전통을 이어받았다.
인상주의의 예술 사조가 붐을 이루던 시기에 활동하던 그의 이름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하지만, 인물의 내면까지 표현해 내는 그의 사실적인 해석은 아름다움의 결정체라 할 수 있다.




윌리엄 부그로: Nymphs and Satyr(18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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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귀스트 로댕은 ‘생각하는 사람’ 외에도 수많은 조각품을 제작한 조각가다.
그 중에는 ‘구스타프 말러’의 두상이 헨리 제이 하인즈 2세 갤러리에 전시돼 있다.
말러는 사랑하는 아내(알마)를 젊은 남자에게 빼앗기는 아픔을 겪은 사람이다.
그 것 뿐인가,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사사건건 말러를 경멸했던 빈의 사람들.
그러한 상황에서도 그는 교향곡 제 9번을 완성시켰다.




오귀스트 로댕이 조각한 작곡가 구스타프 말러의 두상


1911년에는 교향곡 제 10번의 작곡을 시작했지만, 끝내지 못한채 5월 18일 세상을 떠났다.
그러나 그의 위대한 음악은 사람들의 심금을 울리며 지금도 살아 움직이고 있다.
말러 두상이 슬픈 눈동자로 나를 쳐다 보고 있었다.

글, 사진: 곽노은

*화가들의 흑백 사진은 구글에서 가져 온 것입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RjYs99atLUI =
Mahler - Symphony No 9 - Haiti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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