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로냐 Bologna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대학은 이탈리아의 볼로냐 대학(University of Bologna)이다. 1088년에 만들어졌다고 하니 올해로 대학 창설 930년이 됐다. 이 대학출신의 유명한 인물은 볼로냐 학파의 창시자인 이르네리우스, 중세 유럽의 정치가, 성직자, 역사가였던 티레의 윌리엄, 향연, 속어론, 새로운 삶, 제정론, 신곡을 쓴 불세출의 시인 단테 알리기에리, 이탈리아의 문예부흥기를 대표하는 인문주의자 프란체스코 페트라르카, 독일 미술의 아버지로 추앙받는 화가 알브레히트 뒤러, 무선 통신을 실용화한 전기공학자 굴리엘모 마르코니 등이 있다. 8만명이 넘는 학생들이 공부하고 있는 대학은 단과별 시설로 시내 곳곳에 흩어져 있다. 그 중 로열 스페인어 대학은 1364년에 설립되었으며 건물은 1365-67년 사이에 건축된 것이다. 건물 안에는 그동안의 역사를 자랑하듯 오래된 흔적들이 여기저기에 보인다. 이곳에서 조금 떨어진 골목에서는 외국어 문학을 공부하고 있는 학생들이 삼삼오오 모여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었다. 볼로냐의 또 하나 특징은 비를 맞지 않고 걸을 수 있는 주랑현관(포르티코)이 있는 것이다. 포르티코는 시내 전체에 걸쳐 45km(28 마일)나 이어져 있는데 대개 높이는 2.66미터에 이른다. 중세에는 말을 타고 건물 안으로 들락거려야 했으므로 주랑 또한 높게 지은 것이다. 포르티코는 당시 볼로냐 대학의 부족했던 강의실 역활도 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골목 곳곳에는 학생들이 타고 다니는 자전거들이 아무렇게나 세워져 있다. 자전거는 심플하고 오래된 것이지만 아주 단단해 보인다. 원래 볼로냐에는 200개에 가까운 탑이 있었다고 한다. 현재는 크고 작은 60개의 탑만 시내에 남아있다. 그 중 가장 높은 탑은 아시넬리 탑(97m)과 가리센다 탑(48m)이다. 아시넬리 탑 앞에는 5세기 볼로냐의 주교였던 성 페트로니우스(Saint Petronius)의 동상이 서있다. 젊은 페트로니우스는 금식하며 예루살렘 성지를 방문하기도 했던 하나님을 사랑한 순례자였다. 1390년 건축을 시작하여 1663년 완성한 산 페트로니오 성당이 바로 그에게 봉헌된 성당이다. 이 성당은 본래 로마의 성 베드로 대성당 보다 더 큰 규모로 계획됐다가 바티칸의 간섭으로 좌절된 바 있다. 성당의 파사드는 아직까지도 미완성이지만 건축학적 또는 예술적인 가치는 아주 높은 건축물이다. 본당에는 22개의 작은 예배당이 있고 야코포 델라 퀘르차의 ‘이브의 유혹’ 등 예술품들로 가득 차 있다. 3유로를 내고 성당 꼭대기에 오르면 아시넬리 탑과 가리센다 탑 등 시내 곳곳을 바라 볼 수 있다. 성당 앞 건물은 관광안내소와 카페가 있는 포데스타 궁전(Palazzo del Podesta), 왼쪽에는 시청사가 자리 잡고 있는 코뮤날레 궁전(Palazzo Comunale)이다, 시청사와 산 페트로니오 성당이 위치해 있는 마조레 광장(Piazza Maggiore)은 볼로냐의 중심이다. 옛부터 광장에서는 기마 경주, 격투기, 교수형 집행, 축제 행렬 등이 이루어 졌고.. 현재도 이곳은 넵투누스 분수를 중심으로 만남의 장소와 관광객들의 기념촬영 장소로 활기가 넘친다. 포데스타 궁정 왼쪽으로 있는 건물에는 시립 고고학 박물관이 자리 잡고 있다. 무료로 입장할 수 있는 박물관에는 선사시대, 에트루리아 시대, 로마 시대의 귀중한 유물들이 전시돼 있다. 카톨릭 디렉터리 닷컴에 의하면 볼로냐에는 크고 작은 카톨릭 성당이 128개나 있다고 전한다. 그 중 산 도메니코 성당에서는 미켈란젤로의 젊은 시절(20세) 작품들을 감상할 수 있다. 미켈란젤로는 볼로냐에서 약 1년 정도 머물며 이곳의 인문학자들과 교류하며 지낸 시절이 있었다. 그는 단테, 페트라르카, 보카치오의 작품을 읽고 토론했는데 볼로냐 사람들은 그의 토스카나 악센트를 좋아했다고 한다. *그가 볼로냐에서 제작한 작품은 산 도메니코 성당의 성 프로코 동상과 성 도메니코 유골함 장식(1495-96)이었다. 그 중에는 ‘볼로냐 시의 모양을 안고 있는 성 페트로니우스’와 ‘촛대를 든 천사’ 등이 있다. 볼로냐는 여러가지로 역사적이고 아름다운 도시지만 도시의 최고 매력은 마조레 광장에 있다. *저녁 6시가 되니 루치오 달라(Lucio Dalla)가 부르는 ‘1943년 3월 4일생’이 광장에 울려 퍼진 것이다. 바로 1971년 산레모 가요제 3위 곡으로 이용복이 번안해 불러 대히트 시킨 노래(후에 금지곡)다, 당시 우승곡은 니콜라 디바리의 ‘마음은 짚시’. 2위 곡은 호세 펠리치아노의 ‘케 사라’였다. 루치오 달라는 볼로냐에서 1943년 3월 4일 태어나 7살때 아버지를 잃은 슬픔을 가지고 있다. 1943년 3월 4일생이란 노래도 자신의 출생에 관한 것으로 어린시절의 아픔을 담담히 고백한 곡이다. 그는 1986년에는 카루소(Caruso)를 작곡하고 노래해 이탈리아를 비롯한 전세계의 주목을 받은 바 있다. 카루소는 루치아노 파바로티, 안드레아 보첼리, 훌리오 이글레시아스 등 수많은 가수들이 불렀다. 1999년에 달라는 볼로냐를 빛낸 인물로 볼로냐 대학교(인문 철학대학)에서 명예 학위를 받는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루치오 달라는 2012년 스위스 몽트뢰 투어 중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난다. 마조레 광장(산 페트로니오 성당)에서 거행된 그의 장례식에는 5만명의 조문객들이 모였다고 한다. 볼로냐 시민들의 퇴근 시간에 맞춰 광장에 울려 퍼지는 슬프고도 아름다운 루치오 달라의 음악. 어느새 노래는 "카루소"로 바뀌어 파바로티와 달라의 목소리가 광장을 울리고 있었다. Qui dove il mare luccica E tira forte il vento.. 글, 사진: 곽노은 *표시의 이미지(3장)와 루치오 달라의 이미지는 구글에서 가져왔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