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에 국무총리를 지내셨던 분의 외동아들이 서울의 아파트에서 숨진채 발견되었다는 신문기사를 읽었다. 나랑 동갑인 사람이 중풍후유증으로 세상을 떠났다니 “아아, 너도 가고 나도 가야지”하는 옛 노래가 생각났다.
국무총리의 귀한 외동아들에 비하면, 나는 비교가 안될 정도로 미천한 집안출신이다. 부모님 두분 다 국민학교 문 근방에도 못 가 보셨고, 아버지는 일찍 암으로 돌아 가셨고, 칠남매를 혼자 키워야 했던 홀어머니 밑에서 자라면서 나는 우울과 가난이 몸에 배어 있었다.
세상만사 생각하기 나름이라는 말처럼, 유명한 아버지 후광을 업고 크면 장점도 있겠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아버지 만큼은 못 될 것이라는 심적인 부담도 있을 것 같고, 가난한 집안 출신은 조금만 노력해도 부모님 세대 보다는 나을 수 있다는 심리적인 잇점도 있을 것 같기도 하다.
프랑스의 실존주의 철학자 쟝 폴 싸르뜨르는 나처럼 네살 때 아버지가 돌아 가신 모양인데, 아버지의 권위에 눌려 눈치 볼 필요가 없어 자유롭게 살 수 있어서 좋았던지, 싸르뜨르는 , “아버지가 아들을 위해 해 줄 수 있는 최고의 것은 일찍 죽는 것” (The best thing a father can do for his son is to die young.)이라는 말을 했다고 한다. 나는 아버지 없는 설움과 외로움, 가난을 겪어 봤기 때문에, 싸르뜨르의 말에 전적으로 동의할 수는 없지만, 싸르뜨르의 말에도 어느 정도 일리가 있다고도 본다.
나는 동생이 중학교때 강에서 놀다 익사사고로 세상을 떠난 후, 육남매중 막내가 되어 형님들과 누님들이 돈을 어떻게 대하는 것을 보고 자라며 느낀 것이 하나 있다. “형만한 동생없다”는 말이 있듯이, 나의 큰 형님과 작은 형님은 나보다 성품이 너그럽고 좋은 점이 많이 있다.
그런데, 돈문제 만큼은 나는 큰 형님과 작은 형님에게 불만이 있었다. 가령, 큰 형님은 성품이 너그러워 돈이 있으면 펑펑 써버리고, 돈이 없으면 쩔쩔 매다가 가족들 친지들에게 돈을 빌려서 갚지 못하고 민폐를 끼치는 스타일이고, 작은 형님은 정반대로 성실하게 노력하여 알뜰히 저축하여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지만, 자기 밖에 모르고 남에게 인색한 스타일이다. 나는 늘 가난한 학생으로 형님들이 나를 좀 도와 주지 않나 기대하던, 이기적이고 자립정신이 결여된 사람이었다.
우리 누님들이 큰 형님과 작은 형님에 대해 말할 때, 남을 돕는데는 인색하지만 남에게 민폐를 끼치지 않는 작은 형님이, 돈을 빌려서 쓰고는 갚지 못해 일가친지들에게 신용을 잃고 존경을 받지 못하는 큰 형님 보다 낫다는 말을 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
나이가 들고 보니, 인생에서 제일 첫번째 신성한 의무는 “자신을 도와 경제자립을 하는 것이고, 두번째가 남을 돕는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최근 한국신문에 보니, 서울의 고급 주상아파트에 사는 50대의 한인 국제 변호사가 40대의 아내랑 돈문제로 싸우다 이성을 잃고 아내를 둔기로 때려 살해한 사건이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아내가 피를 흘리며 죽어 가고 있는데, 그 국제변호사는 병원응급실에 전화를 한 게 아니라, 그의 아버지 한테 먼저 전화를 했다고 한다. 그 변호사의 아버지는 서울법대 출신으로 국회의원을 지낸 법률가라고 했다.
나는 이 신문기사를 읽고 노파심에서 서울에서 정신과 의사로 일하는 조카에게 카톡 메시지를 보내었다: “니가 초임 의사로서 분수에 넘치는 소비생활을 하여 빚을 지고 살면 스트레스를 받게 되니, 수입에 맞추어 절약해서 사는게 마음 편하게 사는 길임을 깨닫길 바란다.”고 했다.
자기가 노력해서 경제자립을 하지 않으면, 부모 자식간에도 천덕꾸러기가 되고, 온갖 심리적 문제, 인간관계의 갈등의 뿌리가 되는 것 같다. 아무리 수입이 적고, 천한 일을 해도, 절약해서 자립해서 살면, 떳떳하고 당당하게 살게 되지만, 심신의 장애가 없는 사람이 부모님이나 주변 사람들에게 의지해서 살면 자존심도 낮아지고, 주종관계의 비굴한 노예상태가 되지 않나 싶다.
“경제의 예속은 양심의 예속으로 이어질 수” 있으니, 절약해서 빚지지 않고, 경제적인 자립을 이루고 사는 것이 그 어떤 것 보다 더 성스러운 첫번째 의무인 것 같다. 그래서 나는 미국 속담에 있는 “수입한도내에서 살아라. (Live within your means.)란 말을 좋아하며, 돌아가신 우리 어머니가 들려 주신, “버는 재주 없으면, 쓰는 재주도 없어야 한다.”는 말이 지혜로운 말씀이라 생각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소비가 미덕”이란 말도 틀린 말은 아니지만, 수입보다 지출이 많은 경제생활은 가난과 빚에 시달리게 하니, 한달에 일 주일쯤은 “돈을 안쓰는 소비 금식 (Financial Fasting)”을 해 보는 것도 좋은 훈련방법이라 느껴져 나도 가끔 시도를 하고 있다.
감리교회 운동의 창시자로 알려진 요한 웨슬레 목사는, “가능한 한 많이 벌고, 가능한 한 많이 저축하고, 가능한 한 많이 나눠 주어라”고 했다. (Earn as much as you can. Save as much as you can. Give as much as you. -John Wesle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