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는 서양무당?”
내가 네살 때 아버지가 암으로 돌아 가셨을 때 어렸지만 마음이 어둡고 슬펐던 기억이 난다. 그 때 우리집은 교회를 다니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 어머니는 무당을 불러 굿을 했는데, 여자 무당은 밤새 무슨 주문을 외우며, 돌아 가신 우리 아버지의 영혼을 달래며, 슬픔에 잠긴 우리 가족들을 위로해 주기 위해 애를 썼던 것 같다.
그 후에 큰 형님이 교회에 나가기 시작한 후, 우리 가족은 모두 기독교로 개종했고, 큰 형님은 목사가 되어 은퇴를 한 지 오래 되었고, 나는 미국에 건너와 미국인을 대상으로 목회활동을 하고 있다. 그런데, 미국도 기독교 세력이 쇠퇴하고 있어, 몇몇 큰 교회를 제외한 대부분의 교회들이 주일 출석 인원 50명 미만으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그래서 목사들이 부업을 해서 생활비에 보태는 경우도 있는데, 주중에 스쿨 버스를 운전하는 목사도 있고, 심지어 술집에서 바텐더를 하는 목사도 있다고 하던데, 나는 오래전에 일년간 병원 임상목회 교육 (CPE)을 마친 자격증을 살려 병원에서 채플린 일을 부업으로 하고 있다.
병원에서 목사가 하는 일은 죽을 병에 걸린 환자들을 기도로 고쳐 주는 일을 하는 것은 아니고, 주로 환자가 죽을 때 가족들을 위로해 주고, 죽음을 순순히 받아 들이고 승화할 수 있도록 종교적, 정서적인 서비스를 제공하는 일을 하고 있다.
문익환 목사님이 “목사는 서양무당”이라는 말을 했다는데, 얼핏 들으면 기분 나쁘게 들리지만, 가만히 생각해 보면, 죽음 앞에 무력한 유가족들을 위로하고 용기를 북돋워 주는 일을 하는 것에는 공통점이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오늘은 채플린 사무실에 앉아 있는데 간호사가 전화로 환자 한 사람을 방문해 달라는 연락을 받고, 병실로 올라 갔다. 복도에 노부부가 서 있다가 나를 보고 “와 주어서 고맙다”고 했다. 팔순이 되어 보이는 백인 영감님은 나한테, “내 아들이 암으로 곧 죽을 것 같다. 내 아들이 네 살 때 내가 이혼하는 바람에 아들은 내 전처와 같이 살았던 관계로 나랑 아들은 친하게 지내는 사이가 아니다. 60세가 된 아들은 암이 온 장기에 다 퍼져서 얼마 못 갈 것 같다.”고 했다.
같이 병실에 들어 가 보자, 암으로 몸이 피폐해 져서 그런지, 나보다 두살 어린 사람인데, 팍삭 늙은 노인의 모습이었다. 팔순 노인 아버지가 육순인 아들이 죽어 가는 모습을 봐야 하니, 마음이 편치 않을 것 같았다. 나는 “하나님의 뜻이 이 아들을 영원한 안식처인 하늘나라로 데려 가시는 것 이라면, 순응하여 마음의 평안을 누리길 기도한다”는 기도를 한 후 병실을 나왔다.
원목 사무실에 돌아와 앉아 있으니, 컴퓨터 모니터에 중환자실 방문요청 메시지가 와 있었다. 중환자실에 가서 병실에 들어 가니, 히스패닉 아주머니가 자기는 영어를 잘 못하니, 미국인 남편과 얘기해 보라며 전화를 넘겨 주었다. 미국인 남편은 “환자는 자기 누님인데, 며칠 못 갈 것 같으니, 임종 기도를 드려 달라”고 했다.
그 때 할머니 환자는 눈을 뜨고 나를 보더니, 내가 임종기도를 드리는 것이 마치 자기에게 빨리 죽으라고 하는 것처럼 느껴 졌는지, 내가 “기도해 드릴까요?”하고 묻자, 거부 의사를 표시했다. 재차 “기도해 드리는 것 원치 않으세요?”하고 묻자, “원치 않는다.”고 했다. 아마 아직 죽고 싶은 마음이 없어서 그런지 모르겠다. 그럴 때는 환자의 의사를 존중하여 나와 주어야 한다.
퇴근을 하고 집에 와서 저녁식사를 마치고 쉬고 있는데, 병원에서 연락이 왔다. 응급실에 급히 와 줄 수 있느냐고 물었다. 급하게 운전을 하여, 응급실에 도착했더니, 간호사로 부터 환자가 이미 사망하였으니, 가족들을 만나 보라는 말을 들었다.
응급실 병실에 들어 가 보니, 78세의 백인 노인이 자는 듯 사망한 채 누어 있었다. 심장마비로 응급실에 도착하자 마자 사망선고를 받은 듯 했다. 다행히, 할머니는 아들부부와 어린 손자와 손녀들과 함께 남편의 사망을 순순히 받아 들여 평온해 뵈었다. 할머니는, “우리 남편은 좋은 사람이었다. 평생 중학교 선생으로 가르쳤고 중학생인 손자랑 죽이 잘 맞아 친하게 지냈다. 오늘 점심때 까지 멀쩡했는데, 갑자기 돌아 가셔서 정신이 없지만, 의사가 할아버지가 큰 고통을 겪지 않고 갔으니, 그것도 복이라고 하더라”고 했다. 손자, 손녀들이 할아버지 시신 앞에서도 비교적 평온해 뵈었다.
나는 유가족에게 빙 둘러 서서 서로 손을 잡게 한 후, “사람의 목숨은 하늘에 달려 있다고 하니, 할아버지가 갑자기 돌아 가셔서, 슬프겠지만 어떡하겠느냐? 할아버지가 천국에서 안식하시길 바란다”는 기도를 한 후, 가족들에게 위로의 인사를 하고 병실을 나왔다. 이 세상에는 건강하고 잘 생긴 사람들만 있는 것이 아니고, 병들고 죽는 사람들도 있다는 사실을 병원에서 일하며 깨닫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