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괴로운 인생길 가는 몸이”

2024.05.21

                                           조정래 목사의 세상사는 이야기


                                                 “괴로운 인생길 가는 몸이”


오늘 아침에 채플린 사무실에 앉아 있는데 산부인과 병동 간호사로 부터 17주된 아기가 유산이 되어 엄마가 슬퍼하고 있는데, 카톨릭 신부님을 좀 찾아서 보내어 줄 수 있느냐 전화를 받았다.


카톨릭 신부님을 찾는 전화를 해도 카톨릭 신부가 바빠서 전화 연락이 잘 안 되기 때문에, 간호사에게 채플린은 모든 종파를 다 초월하여 환자들을 위해 기도할 수 있으니, 가족들에게 채플린은 안되는지 물어 보라고 했다.


얼마 지난 후 간호사로부터 채플린이 와서 기도 해도 된다는 말을 듣고, 산부인과 병동으로 갔다. 나를 안내하는 간호사는, “이 산모는 다른 아이들도 있고, 예전에도 유산한 일들이 있었다”고 귀뜀을 해 주었다. 병실에 들어가니 작은 통에 손바닥 보다 작은 아기가 누어 있었다. 이미 죽은 듯 했다.  유산을 한 후 얼굴이 핼쓱해 있는 중년의 백인여자와 남편 그리고 가족들이 슬픈 얼굴을 하고 있었다.


나는 뭐라 위로의 말을 해야 할 지 몰라 난처했다. 그렇다고 가만히 있을 수도 없으니, 무슨 말이라도 해야 하는데, 위로한답시고 헛소리를 했다가는 마음에 더 상처를 줄 수 있으니 쉽지 않은 일이다. 나는 “인생에는 우리가 이해하지 못하는 일도 일어난다. 아이가 천국에서 편히 쉬길 바란다. 하나님의 위로가 유가족에 함께 하시길 바란다”하는 힘없는 기도를 드리고 병실을 나왔다.


사무실에서 점심을 먹은 후 환자방문 요청 이멜을 받고, 4층 일반병실에 있는 환자 병실에 들어 갔다. 50대 후반으로 보이는 백인남자가 왼쪽 다리에 붕대를 감고 누워 있는데, 왼쪽 발목 위쪽의 절단수술을 한 모양이었다. 


환자의 말을 들어 보니, 당뇨병을 앓은지 15년이 넘는데 2년전부터 발에 염증이 생긴 것이 낫지를 않아 다리를 절단하는 수술을 받았는데 곧 요양병원으로 옮겨 물리치료를 받게 된다고 했다. 아내랑 이혼하고 지금은 혼자 살고 있는데, 장성한 자녀가 둘이 있고 이혼한 아내와는 친구처럼 지낸다고 했다.


오른쪽 무릎에도 수술자국이 있어서, 오른쪽 무릎도 수술했느냐고 물어 보았더니, 고등학교때 풋볼을 하다가 다쳐서 무릎수술을 한 적이 있다고 했다. 나보다 더 젊은 사람이 한쪽 다리는 무릎수술을 받고 다른 한쪽 다리는 절단 수술을 받았다고 하니, 나보다 더 인생을 힘들게 살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무실에 돌아가 쉬고 있는데 중환자실 간호사로 부터 곧 호스피스 병동으로 옮겨 가는 환자와 가족들을 좀 방문해 달라는 연락을 받았다. 중환자실에 도착하니, 할머니가 병상에 누워 계시고 가족들이 병상 주변에 둘러 서 있었다. 중년여성이 눈물을 글썽이며, “우리 어머니인데 곧 호스피스 병동으로 옮기게 되는데, 임종 기도를 해 주었으면 한다”고 했다.


할머니는 딸이 “어머니가 곧 돌아 가실 것 같다”는 말을 가만히 듣고만 있었다. 나는 어색한 고요함을 참지 못해 이런 말을 해 주었다. “사람인생은 풀과 같고 사람의 영광은 풀의 꽃과 같다고 합니다. 풀은 시들고 꽃은 떨어지나, 하나님의 사랑은 영원히 우리와 함께 할 것입니다. 인생이란 잠시 이 세상 구경하고 돌아가는 소풍여행이라 합니다. 할머니, 아무런 염려하지 마시고, 하나님의 은혜에 몸을 맡겨 드리세요. 이 세상에 있거나, 저 세상으로 가거나 하나님이 할머니를 보살펴 주실 것입니다.”고 했다. 할머니가 싱긋이 웃으시자, 나는 우스개 소리로 분위기를 호전시켜 보기로 했다. “우리 교회에 92살 되신 할머니가 있었는데, 저 보고 “나는 지금 92살인데데, 왜 아직 살아 있는지 모르겠다. 하나님이 내가 천당에 오는 것을 싫어 해서 그런지, 아니면 마귀들이 내가 지옥에 올까 봐 무서워서 그러는지 아무도 나를 데려 가지 않는다”고 하자, 할머니는 밝게 웃으셨다.


할머니가 웃는 모습을 보고 “할머니, 천당과 지옥에 대해 염려하실 필요 없습니다. 마크 트웨인이 이런 말을 했다고 해요. “나는 천당과 지옥에 대해 무서워 하지 않는다. 내 친구들이 천당과 지옥에 다 있기 때문이다.”고 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돌아 가시면서, “아버지여, 내 영혼을 당신께 맡기나이다”라는 기도를 하셨듯이, 할머니도 아무 염려 마시고, 은혜로우신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겨 드리고 편안한 마음을 가지시길 바랍니다”하는 기도를 드리고 병실을 나왔다.


사무실로 돌아와 환자 방문 결과를 챠트에 기록하려고 챠트를 보니, 나는 할머니가 72세로 비교적 젊은 할머니가 죽음을 눈앞에 두고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 환자기록부를 보니, 아마도 직장암으로 장루 주머니 (ostomy)를 차고 살았는데, 건강이 악화되어, 장루 주머니를 스스로 관리할 수도 없고, 직장 생활을 하는 딸이 돌보아 줄 수도 없어 이제 호스피스 병동으로 가서 죽기만 기다리는 신세가 된 것 같았다.


동물이나 사람이나 스스로 걸을 수 없거나, 배변을 혼자서 처리할 수 없으면, 삶의 질이 떨어지고, 주변의 도움마저 받을 수 없는 형편에 이르게 되면, 죽음을 맞아야 하는 것이 자연의 순리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풀이나 꽃이나, 나무는 싹이 트고 자라나고 열매를 맺고 시들고 죽어 가는 과정이 요란을 피우지 않고 조용하고 자연스러워, 오히려 동물이나 인간보다 한 수 위인 것 같은 느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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