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오래 살다 보니 별일 다 본다”

2024.05.11

             

                                                               조정래 목사의 세상사는 이야기


                                                               “오래 살다 보니 별일 다 본다”


나는 한국에서 32년을 살았고, 미국에서 32년을 살았지만, 나의 생각과 정서는 한국적이고, 미국의 언어와 문화는 아직 낯설게 느껴진다. 오늘은 색다른 결혼식에 참석할 기회가 있었다. 60이 넘은 두 늙은 미국 여자들이 우리 교회에서 동성 결혼식을 올린 것이다.


2015년에 미연방 대법원에서 동성간의 결혼을 합헌이라고 판시한 후, 미국에서는 동성간의 결혼이 합법적으로 이루어지게 되었다. 미국의 교회들은 이 결정에 두가지의 다른 반응을 보였다. 진보적인 교단인 미국 성공회, 미국 장로교회 (PCUSA), 미국 복음 루터란 교회 (ELCA)교단들은 동성애인들의 결혼을 옹호하기로 결정했지만, 보수적인 교단인, 천주교회, 남침례교회, 보수파 루터란 교회 (WELS)등은 동성애인들의 결혼을 결사 반대하고 있다.


필자가 속한 미국연합감리교회는 52년전인 1972년에 교단의 최고입법모임인 총회에서 “동성애는 기독교의 가르침에 위배된다”는 문구를 투표를 거쳐 입법화한 후, 교단의 입장으로 고취해 왔으나, 동성애자들의 인권을 옹호하는 교회내 세력들과의 의견충돌로 52년간 싸워오다가 최근에 총회에서 동성애자들의 인권과 동성애자들의 성직 안수를 허용하는 법안이 통과되었다.


교단의 법이 통과된 후 불과 2주도 되지 않아, 우리 교회에서 두 할머니 레즈비언 커플이 결혼예식을 거행하게 된 것이었다. 그런데, 두 할머니중 켈리는 우리 교회에서 목회하던 여자 목사였고, 그의 파트너인 쥬디는 우리 교회의 평신도 대표를 오래 했던 사람이었다. 


내가 3년전에 우리 교회 (Milwaukee Bay View United Methodist Church)에 처음 부임했을 때, 누가 나한테 살짜기, “이 교회에서 12년간 목회하던 여자 목사인 켈리 목사와 여자 평신도 대표인 쥬디가 레즈비언 커플이 되어 동거생활을 한지 몇 년이 되는데 알고만 있고 모른체하라”고 했다.


켈리 목사는 이 교회에 처음 왔을 때는 남편과 함께 세 쌍동이(아들 둘, 딸 하나)를 낳아 기르던 여자 목사였다고 했다. 그 후 일반인이었던 남편과 이혼하고 이혼녀 목사로 홀로 세 쌍둥이 아이를 키우며 목회를 하다가, 남자처럼 우락부락하게 생긴 초등학교 교사인 쥬디와 눈이 맞아 레즈비언 관계로 발전한 모양이었다.


켈리 목사는 우리 교회에서 12년 동안 목회를 잘 한 후, 이웃 동네의 교회로 임지를 옮긴 후, 쥬디와 동거생활에 들어 갔고, 진보적인 성향의 우리 교회의 교인들은 그런 사실을 알면서도 묵인하고 응원하는 분위기였다고 한다.


몇달전에 쥬디가 나한테, “켈리 목사랑 결혼식을 우리 교회에서 올리려고 하는데, 괞챦겠느냐?”고 물어 왔다. 나는 “괞챦으니, 결혼식을 하시라”고 했다. 쥬디는 선심쓰듯이, “조목사가 레즈비언 결혼식을 했다고 알려지면, 불이익을 당할 수 있으니, 주례는 우리가 아는 다른 교회 목사에게 부탁하려 한다”고 해서 나는 “그렇게 하시라”고 했다.


나는 미국의 연방법과 교단의 법이 허용하기 때문에, 동성간의 결혼을 주례할 마음이 있었지만, 내가 동성연애자들의 결혼식을 주례했다는 소문이 나면, 정신나간 목사라고 욕을 먹을 우려가 있기 때문에, 레즈비언 할머니들의 결혼식의 주례를 부탁받지 않은 일이 다행한 일인지 모르나, 내 교회에서 일어나는 결혼식에 주례 부탁을 받지 못해 좀 서운한 마음도 들었다.


나는 내성적이고 소심한 A형 성격이라, 성격이 강한 켈리 목사와 우락부락한 남자 성격인 쥬디와 잘 맞지 않아 교회일로 몇번 마찰이 있었고, 나랑 별로 친한 사이가 아니라서, 자기들 결혼예식에 나를 참여 시키지 않는 것이 이해할 만 했지만, 결혼식에 정식 초청도 받지 못하고 결혼예식에 아무런 파트도 부탁받지 않아 은근히 무시당한 것 같이 기분이 안 좋았다.


나는 자존심이 상하여, 결혼식에 가지 말까 하는 옹졸한 마음도 들었으나, 은퇴한 미국 목사님들에게 상의해 본 결과, “자존심을 내세워 동료목사와 교인이 결혼하는데 축하마저 안하는 것은 소인배이니, 가서 축하해 주는 것이 당연한 것이라”고 조언을 해 주었다. 아내는 내가 참석하지 않으면, 교인들이 이상하게 생각할 것이니, 자기 혼자라도 가서 축하해 주겠다고 해서, 나도 억지로 참석하기로 했다.


결혼식 주례자는 옆 동네의 미국 장로교 (PCUSA) 미국인 할머니 목사였다. 그 할머니 목사는 나한테, “감리교단 법이 일찍 통과 되었더라면, 조목사한테 주례 부탁을 했을텐데, 내가 주례를 맡게 되어 미안하다”는 인사치레를 하면서, 주례를 부탁 받지 못해 자존심 상해 하는 나를 위로해 주었다. 


성경봉독과 시 낭송은 켈리 목사의 친구들인 은퇴 미국인 여자 목사들이 맡았고, 나한테는 축도마저 시키지 않아 나는 서운했지만, 두 할머니 레즈비언들이 결혼하는데, 할머니 목사가 주례하는 것이 동양인 남자 목사가 하는 것보다 더 자연스럽게 보이긴 했다. 


켈리 목사의 장성한 세 쌍둥이 자녀와 켈리의 인도인 사위, 쥬디의 부모님과 쥬디 오빠도 참석했고, 쥬디가 중국에서 입양해 키운 딸과 쥬디의 친구인 무슬림 여성도 히잡을 쓴 채 참석했고, 우리 교회 교인들과 친지, 친구들이 약 백여명 예식에 참석했다.


나는 결혼식 피로연에도 참석받지 못해, “우리 교회에서 우리 교인이 결혼하는데, 장로교 여자 목사가 주례했고, 나는 축도 부탁도 못 받고, 결혼식 피로연에 초청 받지도 못했는데, 한국 교회였으면 상상도 못할 일이다”고 속으로 부글부글 끓었지만, 아내는, “별로 친하게 지나지도 않은 사람들 피로연에 가면 뭘하냐? 억지로 친한 척 하지 않아도 되니, 초청 받지 않을 것을 다행으로 생각해라”고 했다.


나는 “결혼선물로 줄 선물카드를 하나 사 놓았으니, 주일날 주겠다”고 하자, 아내는 “한국사람들이 결혼 선물로 주는 청동오리를 인터넷으로 주문했다”고 했다. 나는 “레즈비언 청동오리도 팔더냐?”하고 물었더니, 아내는 “청동오리 목각인형이 비싸지 않더라. 그래서 두 쌍을 주문했는데, 숫놈 오리 두마리는 빼고, 암놈 오리 두마리를 포장해서 선물하겠다”고 했다. 세상 오래 살다보니, 별일 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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