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도 가지가지
필자처럼 다양한 형태의 이런저런 사람을 만나 깊은 속사정을 듣게 되는 이도 드물 것이다. 재벌회장과 정치인 등부터 이역만리에서 홈리스 수준으로 전락한 이들까지 퍽이나 다양한 각계각층의 이들을 만나 이들의 고민을 듣고 이를 해결 할수있는 방향을 조언한다. 큰 부자라고 해서 특별히 그들을 대우하여 상담시간을 더 배려한다 거나 상담비를 더 받는 것도 아니고 너무 가난하다 하여 그들을 홀대 하거나 상담시간을 짧게 하지도 상담비를 덜 받는 것도 아니다. 따라서 필자에게는 그이들의 직위고하가 별 의미가 없다. 다 똑같은 필자의 고객 한사람일 뿐이다.
십수년 상담을 하며 느낀 점은 사회적 지위가 높은 이들 일 수록 오히려 일반 분들보다 더 겸손하고 예의바른 분이 많았다. 역시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는 말이 맞는 듯했다. 물론 그들 전부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대체적으로 그러했다. 성공했기에 마음의 여유가 있어 그럴 수도 있지만 그런 태도와 마음자세를 갖추었기에 그만한 자리에 오를 수 있었던 것 아닌가하는 생각이 더 든다. 반대로 쥐뿔도 없으면서 안하무인격으로 잘난 체하고 남을 깔보는 이들이 많았다. 쥐뿔도 내세울게 없으니깐 그렇게 허세를 부려서라도 자신을 치장하고 싶은 건지, 그런 태도와 마음 자세 때문에 쥐뿔도 없는 신세가 된 것인지 모르겠으나 아무튼 그랬다.
한국과 미국에서 큰 사업체를 운영하시는 K회장님은 무척이나 겸손하고 예의바른 분이였다. 필자에게 상담신청 예약을 할때에도 절대 비서를 시켜 하지 않고 반드시 본인이 직접 예약을 하고 언제나 예약시간 10분전에는 도착하여 상담순서를 기다렸다. 한 번도 시간에 늦은 적이 없으셨다. 상담실에 들어서기 전에는 반드시 전화기를 꺼놓고 들어오셨다. 대기 중에도 여기저기서 보고 전화가 들어와 바쁜 업무지시를 하다가도 상담실에 들어설 때는 꼭 그랬다. 상담 시에도 일목요연하게 자신의 궁금한 점을 질문하고 필자의 진단을 꼼꼼히 메모지에 적었다. 녹음기를 필자의 코앞에 틀어놓고 ‘실컷 떠들어 봐라!’하는 식의 무례는 절대 범하지 않았다. 이분은 상담비를 꼭 봉투에 넣어서 필자의 쎄커터리에게 상담 후 건네주었다.
봉투 겉봉에는 ‘감사합니다.’라고 적혀있었다. 필자나 필자의 쎄커터리가 “번거롭게 이러시지 않아도 됩니다!”라고 해도 꼭 그러했다. 반면 백수건달인 A씨는 이와는 반대의 행태를 보였다. 이분은 처음 필자를 찾았을 때 짙은 썬글라스를 쓴 채 껌을 질겅질겅 거리며 턱하니 다리를 꼬고 앉아 “나에 대해 한번 맞춰보슈!”라고하며 다리를 달달 떨었다. 이건 완전 조직폭력배 이거나 옛날 유신시절 중앙정보부 똘마니 같은 행세였다. 기분상해서 확 쫒아내 버릴까 하다가 태도가 하두 불량해 보여 그렇게 하면 시끄러워질 것 같아 분기를 꾹 참고 사주팔자를 풀어보니 역시나 아주 천격의 사주팔자였다.
A씨는 툭하면 “내가 왕년에 의원선거에 나갔을 때! 어쩌구 저쩌구”하며 말이 많았다. 필자가 하두 말 같지 않아 “몇 대 국회의원선거에 나가셨길래, 툭하면 출마 이야기를 하십니까? 몇 대 국회의원 선거였지요?”라고 물으니 “아니, 그런 건 지난 이야기니깐 됐고!”라고하며 자꾸 말꼬리를 돌렸다. 나중에 A씨 부인이 상담을 위해 필자를 찾았을 때 물어보니 “국회의원 선거요? 무슨 말씀이세요? 그 웬수가 아마도 옛날에 제가 신당동에서 미장원 할 때 동네 양아치들 몇과 작당하여 구 의원선거에 나가려다가 이게 무슨 미친 짓 이냐고 제가 뜯어 말려 그만 둔 것을 가지고 그 지랄을 하는 모양 이예요!”라고 했다. 한심한 인간 이였다. A씨 부인은 미국에 와서도 한인타운에서 작은 미용실을 운영했다. 종업원 1명과 함께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일해서 겨우 먹고 산다. 작은 미용실이라 해도 워낙 부지런히 움직이니 여자로서는 작은 수입이 아니건만 미국에 와서도 A씨가 맨날 빈둥거리고 놀고 먹으니 혼자 살림 꾸려가기가 벅찼다.
마누라가 미용실에서 죽어라 일해 벌어오는 돈으로 처먹고 빈둥거리면서도 사람들만 만나면 한국의 정치행태가 어떻고 저떻고 흥분하여 한탄을 하곤 하며 우국지사 흉내를 냈다. 사지 멀쩡하고 허우대 멀쩡하니 어디 경비자리라도 얻어서 가사에 보탬이 될 생각은 않고 자신이 엄청나게 잘난 사람인양 건방을 떨며 타운을 헤집고 다녔다. B씨는 A씨와는 달리 쪼끔(?) 성공한 사람 이였다. 미국에 와서 술집웨이터로 뛰다가 작은 가라오케를 열어 장사가 잘 되자 조금 규모가 있는 술집을 하나 더 인수했다. 이때부터 B씨는 자신의 성공을 엄청나게 큰 성공으로 생각하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명함에 회장 직함을 쓰기 시작했다. 가게를 하나밖에 안하는 사람도 사장인데 가게를 두개씩이나 하는 자신도 사장으로 불리는 게 억울(?)했나보다. 아무튼 B회장(꼴같지 않지만 본인이 그렇게 불리워지기를 간절히 원하니 그리 부르자)은 필자에게 상담을 하러 와서는 자신이 엄청난 회사의 회장인양 거드름을 피웠다. 필자에게 반말 비슷하게 말을 놓기도 했고 상담 중에 핸드폰이 울리면 꺼내들고 아무렇지도 않게 쓸데없는 긴 통화를 하곤 했다. 이럴 때면 필자는 가만히 B회장 앞에 공손히 앉아서 통화가 끝나기를 기다려야 했다. 필자의 쎄커터리 중에 성격이 강직한 이가 있어 이 꼴을 보지 못하고, “선생님과 상담 중에 이게 무슨 짓 이예요?”라고 제지하여 실랑이가 있기도 했다. 아무튼 자신이 무슨 대단한 성공이라도 한양 으스대는 꼴이 참 볼 때마다 가관 이였다.
이렇듯 사람의 종류도 여러 가지요 행태도 참 여러 가지였다. 이런저런 사람을 만나면서 필자도 여러 가지 수양을 하게 된다. 쥐뿔도 없으면서 대책 없이 건방진 놈, 자신의 작은 성공을 대단히 여겨 안하무인이 된 꼴같잖은 B회장. 누구라면 세상이 다 알만한 큰 기업체 회장이지만 매사에 겸손한 K회장님에 대한 회상 이였다. 세상은 넓고 사람도 참 가지가지다!
자료제공: GU DO WON (철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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