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지회에모였다.
희주: 어제 밤 하늘을 보았는데 정말 맑고 환했어. 그래서 오늘 이렇게 하늘이 맑고 청명하다.
영서: 어제 뉴스에 일기예보에는 오늘 ‘눈’ 온다고 했거든.
미연: 나도 같이 봤지.
효식: 오늘 점심은 복지회관에서 ‘카레’ 해 주신다고 했어. 할머니 할아버지 카레는 좀 생소하지 않으실까? 우리는 좋아하지만. 캠핑때는 빼 놓을 수 없는 메뉴이잖아.
미연: 할머니 할아버지도 좋아하실거야.
강산: 점심 먹고 비닐 하우스에 간다고 했는데.
경석: 그래. 오늘 우리가 해야 할 일이 있다고 하셨어. 농사하는 것도 배운다고.
영서: 아까 나 찾는냐고 고생 했는데 괜찮겠어? 강산아 농사일?
강산: 네가 장난치는 바람에 오늘 십년은 감수 한 것 같았어.
영서 : (속으로 말한다.- 너는 내가 항상 대장부처럼 보이는구나. 나도 마음과 몸이 여린 소녀라구. 그때는 장난이 아니었어.)
범석: 농사, 그런 건 나는 자신 있지.
미연: 오라버니는 ‘공부벌레’ 이잖아요. 그런데 농사가 자신 있으시다고요. S 대학교 원서 넣을 정도로 공부만 하시는 줄 알았는데요.
범석: 24시간 공부만 하는 건 아니니까.
때론 시골 농사를 해야 맘이 편할 때도 있지. 머리도 좀 식히면서.
영서: 어떻게 이 겨울에 농사라니요?
경석: 아니 그러니까 벼 농사가 아니라 채소 같은 것이겠지. 안 그래?
강산: 당연히 채소나 과일 같은 것이겠지.
미연: 나는 딸기 맛있는데. 여기 어디 딸기 하는, 비닐 하우스 있나?
경석: 이 교수님이 그러셨는데, 아마 딸기는 아닌 것 같구. 뭐 상추나 고추 씨 뿌리는 것?
미연: 우리 빨리 밥먹고 이 교수님 만나러 가자.
효식: 너 의외로 좋아한다. 깔끔떠는 애 잖아 너.
미연: 나 화초 가꾸는 것 좋아해. 집에서도 내가 화초 물 줘.
희주: 글세. 나도 많이 궁금하다. 비닐 하우스에서 어떤 농사를 하게 될지.
비닐 하우스 안에서 옷이랑 장갑이랑 모두들 무장하고 한껏 서 있다.
강산 형: 자 오늘 이렇게 비닐 하우스에 온 것을 환영하며 그 앞에 놓인 작은 삽을 하나씩 다 들도록.
미연: 아 신난다. 난 이것으로 해야지.
효식: 영서야 너는 저쪽으로 가서 해야 할 것 같다. 너 손목이 그리 튼튼하지 않을 테니까. 지난번 손목 다 낳은 것 같아도 낳은 게 아닐거야. 그런데다가 웅덩이에도 빠지고.
영서: 괜찮아. 끄떡 없어. 자 이것봐. 손목이 튼튼하지? (손을 돌리며 손목을 잡는다.)
강산: 쉬운 일 같지만 힘이 좀 들거야. 우리 같이 해 보자.
땅을 파며 오목하게 씨 넣을 자리를 만든다.
“여기서 저 끝까지 원을 그린곳에 땅을 흙을 잘 파 놓도록 하면 돼.”
모두들 열심히 지시한대로 잘 하고 있다.
다음은 여기 씨가 있으니 하나씩 잘 넣고 흙을 덮어 주도록. 알겠지.
네. (대답을 하고서는 덜커덕 엉덩이를 땅에 닿게 앉는다.)
“자 간식(새참) 먹고 일합시다. 일하다가 먹는 간식이 꿀맛이지.”
해가 서편에 닿는다. 붉은 태양 빛이 서산에 걸려 있다.
“오늘 수고들 많았습니다. 여러분이 아주 큰 일을 해 주었어요. 오늘 이 채소가 무럭무럭 잘 자라서 맛있는 식탁에 올라가기를 바라며, 오늘 우리 학생들의 수고가 백배로 채워질 겁니다. 참으로 고마운 일 했습니다.”
효식: 정말 할머니 할아버지 이렇게 고생하시는데 우리는 너무 편하게 잘 먹네요.
강산 형: 그런 의미에서 항상 감사 하며, 즐겁고 보람되게 살아야겠지요.
영서: 우리는 오늘 하루였지만 여기 계시는 어르신께서는 계속 매일 하다시피 하실텐데요.
강산 형: 학생들은 학생의 의무를 잘 해야지. 학생의 의무는 무엇이라고?
학생들: ~아 아~ 당연히 공부~이겠죠~
이 교수: 모두들 다 잘 아는 것이니 잘 지키도록 하고 무엇보다도 건강하게 지혜롭게 자라주십시오.
경석: 역시 선생님과 교수님 최고.
이 교수: 우린 다시 복지회로 가야겠지요. 김 선생님 오늘 농사 짓는 것 까지 가르쳐 주시고 애 많이 쓰셨습니다. 아이들이 다 좋아하네요.
강산 형: 저도 좋습니다. 우리 학생들도 이렇게 말 잘 들었으면 좋겠습니다. 다들 착하게 잘 따라 주네요.
이 교수: 우리는 다음 순서가 있어서.
다시 복지회관으로 모였다.
오늘은 마지막 저녁이니 할아버지 할머니와 함께 게임놀이하고
저녁 먹고 우리끼리 캠프 화이어 해야지.
게임은
팀을 나누어 학생 한 사람이 할머니, 할아버지 업고 과자 (유과)따먹기로 합시다.
남학생은 할머니 업고 과자 따먹고 돌아오기.
여학생은 할아버지랑 한 발 같이 묶고 목표점까지 가서 과자(유과) 먹고 돌아오기.
모두들 힘차게 응원하며 할머니 할아버지 업고 뛰면서
참 할머니 할아버지 가벼우시다. 어떻게 이렇게 가벼운 몸으로 그 큰 일을 하시지.
어서 빨리 우리 농가도 많이 발전하면 좋겠다. 할머니 할아버지 힘 안 드시고 평안하시게....
캠프 화이어
어르신 집 마당에 모닥불을 피운다.
희주: 오늘 밤엔 별들이 안 보인다.
강산: 그러게. 날씨 예보대로 흐린 것 같다.
미연: 춥기도 하고. 빨리 모닥불 피워 줘.
경석: 장작이 어제 내린 눈에 젖어서 그런지 불이 잘 안 붙는다.
강산: 어제저녁에, 우리들 방에 불 때느냐고 마른 장작을 많이 사용해서 그런 거지?
영서: 남은 것 없을까 마른 장작?
강산: 내가 다시 한번 찾아볼게.
효식: 할머니 할아버지 오늘은 일찍 주무신다. 우리 조용히 있다 들어가자.
범석이 뒷 담에 쌓여 있는 장작을 갖고 오면서
범석: 이것은 눈에 젖지 않은 장작 같아. 이것으로 불을 피우자구.
강산: 어디서 찾았는지 잘 찾았네요. 애들이 많이 춥다고 하는데. 빨리 불을 지펴야겠어요.
경석: 이렇게 야외에서 캠프 파이어 하니 기분이 참 새롭네요.
모닥불이 타오르는 광경을 보고
영서: 나무는 참, 우리에게 많은 것을 주네요.
강산: 그래 영서부터 시작하자. 우리 서로 하고 싶은 얘기를 이 시간 다 털어 놓자구.
희주: 응. 따뜻한 시간이 될 것 같다.
효식: 그래서~ 영서의 말을 다 들어 봐야지. 영서야 계속 얘기 해 봐.
영서: 뭐. 다 알다시피 저렇게 희생하잖아. 자신의 몸을 태우며 밝게도 하고 또 봄, 여름, 가을, 겨울 각 계절에 따라 우리에게 많은 것을 선사하니까.
미연: 그래. 끝까지 다 우리에게 준다.
효식: 영서는 또 그 책 생각나는구나.
미연: 희주는 어떻게 생각해. 이 밤에 하고 싶은 얘기 좀 해봐.
희주: 나는 이번 시골방문이 참 아름다운 추억을 많이 쌓는 계기가 되었어.
효식: 할머니 할아버지 진짜 진짜 좋아. 나는 할머니 할아버지와 함께 이렇게 계속 살고 싶어.
강산: 나도 좋은 경험을 하게 되었어. 할머니 할아버지 업는 것도 감동되었어. 엄마 아버지 업기가 정말 생각지도 못했는데. 이번을 계기로 자주 엄마 아버지 업어 드려야 하겠다는 생각을 했지.
경석: 우린 아직 젊으니까. 힘이 있으니까.
강산: 꼭 힘이 있어서라기보다 엄마 아빠 사랑하는 마음이 생겼다고나 할까!
경석: 뭘 그리 꼭 짚어 말을 한다고 하시나. 다 그렇다는 것이지. 너의 말 다 이해 한다고.
강산: 미안. 내가 잘난 척 한 것 같다. 네 말 이해 못하고.
범석: 좋은 얘기 하다가 마음 다치겠네. 나는 빨리 공부 마치고 이곳 시골에다 좋은 것을 설립하고 싶어. 아직 뚜렷하게 무엇을 할 것인지는 생각나진 않지만, 꼭 필요한 것을 하길 원해.
미연: 역시 오라버니는 뭔가가 다르네요.
효식: 오빠 여기 희주 있다고 너무 무게 잡는 것 아니야?
희주: 모닥불이 다 타가네요. 나무가 까맣게 숯이 된 것 같아요.
미연: 희주야 네가 숯을 어떻게 알아. 숯이라는 단어 꽤 어려운 말인데. 생소할텐데.
효식: 희주는 우리보다 더 잘 아는 것 같아. 한국 문화라고 할까? 하여간 한국의 전통을 너무 잘 알아.
영서: 눈이 나리는데요. 아까 저녁부터 흐려지는 것 같더니 지금 눈이 내려요.
강산: 우리 정리하고 들어가야겠다. 내일은 여기를 떠나야 해. 언제 다시 또 이렇게 함께 올지 모르겠지만.
모두들 자리를 털며 일어난다.
각자 자기 방으로 들어가는데 희주가 범석을 잡는다.
희주: 오라버니 잠깐만요. 내가 할 말이 있어요.
범석은 뒤에서 자기의 옷자락을 살짝 잡아 당기는 희주를 돌아보며 뒷걸음으로 나간다.
범석: 무슨 할 말이지?
희주: 오라버니 2월 14일이 무슨 날인지 알아요?
범석: 2월 14일. 별 다른 날 아닌데. (속으로 생각하기를 지난번 생일 초대가 희주 생일로 알았다가 영서 생일 초대였던 것을 알고 얼른 말한다.) 아~ 이번엔 희주 생일이구나.
까만 밤에 하얀 눈이 내리고 어느덧 눈송이가 커다랗게 함박눈처럼 내리는데 눈앞을 가린다.
하얀 눈송이가 희주의 어깨에 내려앉고 무언가를 말하려는 희주의 눈썹위에 하얀 눈이 조용히 내려 앉는다.
희주: (눈을 깜박이며) 오라버니 그날이 무슨 날인지 잘 모르는 구나. 그러면 내가 잘 알게 해 줄게요.
범석: 그럼 다른 특별한 날이야?
희주: 그러면 그날 저녁에 만나기로 해요. 놀라운 일이 있을거에요.
범석: 나에게 비밀인가?
희주: 비밀은 아니지만 아마 그와 비슷한 것이에요.
범석: (희주의 생긋 웃는 그 말에 기대 반...) 이번에 내가 마지막으로 한번 더 속아주지.
희주: 속지 마세요. 속이는 것 아니구 진짜 진짜에요.
범석: 생일 선물이 어떤 것이 좋을까? (생각한다.)
희주: 참, 오라버니 이번에는 그냥 오세요. 아무것도 생각하지도 선물이라는 그런 거 갖고 오지 마시고요, 약속장소에 오시기만 하면 돼요. 알았죠?
범석은 희주의 그 말에 더 의구심을 갖고
범석: 그러면 내가 그날 근사한 저녁을 사지.
효식은 방으로 들어가려다가 희주가 범석을 붙잡는 것을 보고 멈추어 기둥 뒤에서 희주가 말하는 것을 듣는다.
희주의 2월 14일에 만나자는 약속을 듣고 영서에게 좋은 일을 해야겠다고 흐뭇 미소를 띄우며 자기 방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메모지 2장을 갖고 나와서 주방으로 들어간다.
-- To 영서--
영서야 2월 14일 00학습실에 와. 나 공부하러 갈테니.
-- To 강산--
강산아 2월 14일에 00학습실에 와. 나 공부하는 독서실이야. 함께 공부하자.
효식은 두장의 메모지를 잘 접어서 강산을 부르려고 남자 방을 노크한다.
강산이 잠이 오지 않아 눈을 멀뚱멀뚱뜨고 있는데 작은 효식의 노크하며 부르는 목소리를 듣고 밖으로 나온다.
효식: 강산아 영서가 너에게 이거 전해 주라고 했어.
강산: 아까 주면 될 것을. 늦은 이 시각에 이런걸.
효식: 깜박했나봐. 자 이거 받아.
강산: 영서는 가끔~~
효식: (강산의 말을 끊으며) 아자! 나는 건네줬다. 이제 들어가 봐. 잘자고.
효식은 얼른 그 메모 쪽지를 손에 올려놓고 옷을 감싸며 자기 방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영서 옆 자리로 가서 영서의 옷 주머니에 그 쪽지를 넣어 놓는다.
한참 모두들 곤한 꿈나라에 들어갔다.
새벽이 되어가는데 갑자기 ‘푸다닥- 쿵’ 하는 소리가 몇 번 울린다.
잠결에 들은 학생들은 벌떡 일어났다가 아무 소리가 들리지 않아 ‘아직 컴컴한대, 바람이 많이 부는 것 같다.’ 생각하며 자리에 누우려 한다. 그런데 조금 있으려니 또 ‘쿠다당’ 무엇이 쓰러지는 소리가 들린다. 그래서 남학생들이 일제히 일어나 할머니 할아버지 계신 방으로 가려고 한다. 방 밖으로 나왔는데 집 가운데 (거실;마루)에 눈과 함께 흙더미가 쌓여 있다. 지붕이 뚫려있다. 너무도 황당한 나머지 “어르신 ~ ”크게 부른다
범석이 할아버지 할머니 계신 방으로 들어간다.
다행히 할아버지 할머니께서는 무사하셨다. 범석이 놀란 어조로 밖의 얘기를 하고
범석: 어르신 아무래도 집이 위험하니 다른 곳으로 가셔야 할 것 같습니다.
강산: 네. 집이 무너져서 위험합니다. 우선 저희 형 집으로 가시죠.
범석과 강산이 할아버지 할머니를 업고 나오면서 “얘들아 너희들 짐 잘 챙겨서 천천히 우리 따라오도록 해. 아무래도 여기 더 있기가 곤란하겠어. 우선 형 집으로 가 있자.”
모두들 자기 짐을 챙기고 눈오는 그 새벽길을 조심스레 나선다.
강산 형 집에 이르러
‘쿵 쾅 쿵 쾅’ 문을 두드리며 잠을 깨운다.
강산 형이 나오며 놀라면서 할아버지 할머니 계실 방으로 안내한다.
강산과 범석이 자초지종을 얘기하고
이교수: 아침 되면 어르신 집에 가서 잘 알아봐야 겠군요.
강산 형: 눈이 많이 와서 집에 무리가 되었나 봅니다.
이교수: 이번을 계기로 어르신 집을 다시 잘 짓는데 도움을 드리고 싶습니다.
강산 형: 지난번 말씀하신 그 계획을 진행하실련지요.
강산 아버지: 바삐 실행해야겠어.
이교수: 지체할 일이 아닌 것 같군.
강산 형: 그래도 이번 겨울은 지나야겠지요.
이교수: 여기 상황을 잘 파악하고 늦어도 봄이 되기 전에 시작하면 좋을텐데.
강산: 저희들도 집 건축하는데 참여 하고 싶습니다. 벽돌하나라도 옮기면서 힘을 보태고 싶습니다.
이교수: 안전이 제일 우선이니 우리 학생들이 다치지 않도록 유의하면서 함께 동참하면 좋은 일이지. 고맙군.
학생들과 이교수는 다음날 서울로 올라왔다. 먼저 집을 건축하는데 필요한 설계와 예산을 정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