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동이 튼다.
어제 조금 늦게 잔 이유로 모두들 아침에 늦게 일어났다.
할머니 언제 일어나셨는지 밥이랑 반찬이랑 국이랑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밥상을 한 상 차리신다.
효식이와 미연이 영서보다 일찍 자서 그랬는지 영서보다 일찍 일어난다.
효식: (기지개를 활짝, 두 팔을 올려) 아 개운하다. 어쩜 이렇게 방 바닥이 따뜻해. 온돌방이래서 더 따뜻한가봐.
미연: 효식아 너 웬일로 이렇게 일찍 일어났어. 영서 희주는 아직 꿈나라 같은데.
효식: 우리 둘이 아침 만들자.
미연: 그래. (옷을 챙겨 입고 방에서 나와 부엌으로 간다.)
효식: 어머 할머니 벌써 일어나셨어요? 7시 밖에 안 됐는데요.
할머니: 우리에겐 지금 시간이 해가 중천에 뜬 낮 이라우.
미연: 언제 이렇게 많은 반찬을 다 하셨어요. 아 맛있겠다. (손으로 나물을 집어 먹는다.)
효식: 참 할머니 방이 참 따뜻해요. 정말 편하게 잘 잤어요. ~용.
할머니: 그렇잖아도 어제 밤에 할아버지가 장작을 많이 넣었는데 잘 잤다니 다행이네.
효식: 할아버지 감사합니다.
미연: 할머니 정말 맛있어요. 저 할머니 음식 배우고 싶어요.
할머니: 오늘 낮에 그럼 함께 만들어 볼려나?
효식: 네. 할머니. 이건 무슨 나물이에요?
미연이 쿵쿵 남자 방, 문을 두드린다.
“여보세요 남자들. 나와보시지 않겠습니까?”
범석이 옷 단장을 하며 문을 연다.
“나도 거뜬히 잠을 잘 잤어. 나도 시골 출신이긴 하지만 여긴 참 맘이 편하구만. 무슨 일?”
미연이는 “오라버니 일찍 일어났네요. 오라버니가 계시니 든든하네요. 저기요. 아침을 먹어야 하잖아요. 그래서 아침상을 .”
범석: 그러니까 벌써 아침을 먹어야 한다는 것인데. 내가 남자들을 다 모아 올테니 잠시만 기다리시겠는지요.
미연: 오라버니도 유우머 좀 하십니다. 당연하신 말씀. 얼른 남자애들 좀 깨워서 와 주십사와요.
효식: 오빠. 잘 잤어요? 할머니 할아버지께서 우리 때문에 잠도 편히 못 주무시고 이렇게 많은 것을 준비하셨네요.
할머니: 웬 그런말을. 나는 더 가뿐하고 좋아요. 이렇게 어여쁜 내 손자 손녀들처럼 함께 있어 주니 얼마나 좋은지. 나는 하나도 힘들지 않다니까.
효식: 할머니~ 정말 우리 할머니 같으셔요. 인자하신 할머니.
범석이 남자애들을 끌어 당기며 “ 자 어서 이것들을 함께 펴서 옮겨 놓아야지.”
미연이는 영서와 희주 있는 방으로 들어가
“희주야 어서 일어나. 너 아직 미국 시차 있는거야? 왜 이리 늦잠이야~” 한다.
희주 벌떡 일어나며 “아 이 고소한 냄새. 맛있는 냄새. 처음이야.”
영서: 또 처음이라네. 넌 모든 것이 새로워 처음이지? (일어나 이불을 갠다.)
미연: 웬일로 영서 너도 늦잠이니? 8시가 다 되어가는데.
희주: (방문을 열며) 할머니 할아버지 안녕히 주무셨어요?
얘들아 Everybody Good Morning!
효식: 희주의 그 영어 발음 참 신선하다. 나도 Good Morning.
희주: 아 참 오라버니도 있지. 어디에 계시려나~ (두리번 찾는다.)
효식: 오빠 저 어 기 (고개를 돌리며) 있잖아. 너 그리고 희주야 너 너무 오빠한테 극 존칭이야. 그냥 미국식으로 해.
희주: 뭐라고 해야 하는데.
미연: 하이 오라버니 해.
범석: 부엌에서 상 차린 것을 들고 나오며) “Hi, 희주. 잘 잤어.” 한다.
미연: 오라버니는 희주에게만 아침 인사 하네요.
효식: 아침 다 지나가겠다. 모두들 빨리 여기 둘러 앉아. 벌써 할아버지 할머니 앉아 계시는데, 젊은 사람들이 무례하게, 어르신 기다리게 하는 법. 안 되지요.
영서: 할머니 옆에 앉으며) 할머니 할아버지 감사합니다. 맛있게 잘 먹겠습니다.
할아버지: 차린 것 없지만 많이들 먹어요.
희주: 이렇게 많은데요.!!! (모두들 하하 호호 웃으며 맛있게 아침을 먹는다.)
아침을 먹고 복지관에 가는 길.
아무도 걷지 않은 하얀 눈길이 영서의 눈동자에 넓게 펼쳐져 있다.
영서는 옆으로 걸었다 뒤로 걸었다 하며 하얀 눈위에 발자국을 남긴다.
그리고는 나뭇가지위에 예쁘게 피어난 눈꽃들을 가까이서 보려고 그 나무주위로 돌아본다.
‘뿌드득, 뿌드득’ 눈 밟는 소리가 신선하다.
영서: 얘들아 우리 같이 눈 소리 들어보자. 너무너무 깨끗하다.
미연이 영서 있는 곳으로 달려오려는데 ‘푹 푹’ 발이 깊이 파여서 멈짓 하고 한걸음 딛고 멈짓 뒤뚱하며 팔을 휘젓는다.
미연: 영서야 내 발이 깊이 들어가서 걷기가 힘들다. 저녁까지 온 눈이 이렇게 많이 쌓였어.
희주: 나도 갈거야.
총총 뛰어오려는 희주도 멈짓 갸우뚱 몸을 흔들며 눈위에서 묘기를 하는 것 같다.
뒤에서 오던 효식이가 가볍다는 듯이 희주를 번쩍 들어 올린다. 그리고 희주에게 발을 뻗으라 한다. 그래서 희주는 효식에게 들린 채 발을 뻗고 껑충 뛰어넘는다. 그러나 눈밭에 두발이 푹 들어가며 몸을 앞으로 눈위에 쓰러지고 만다.
희주는 “아이 재밌다. 효식아 나 또 그렇게 한번 더 올려줘” 한다.
효식이는 재미있어 하는 희주를 보며 “넌 참 어린아이 같이 순수하다. 그래 한번 더 해 줄게. 나 잡아. ” (희주를 한번 더 들어 올리며 ‘껑충’ 발을 뻗게 한다.)
준비물을 양손에 잔뜩 들고 나오는 남학생들은 그런 광경을 보며 너털 웃음을 지으며
“우리도 한번 눈밭에 등을 대고 누워 볼까” 한다.
강산은 천천히 걸으며 길을 따라 가려 한다.
경석은 신났다는 듯이 눈을 주먹에 담아 눈덩이를 만든다. 그리고 걸어가는 강산에게 던진다.
경서: 야 강산아 이 눈을 좀 받아 볼래?
강산은 뒤도 안 돌아보고 계속 앞으로 간다. 그리고 등뒤에 튕기는 눈덩이를 맞고 갑자기 양손에 들고 있던 준비물 더미를 덮석 내려놓는다.
강산: 너 실력이 그것밖에 안돼. 그럼 내 맛도 좀 봐야지.
눈덩이를 만들어 경석에게 던진다.
경석과 강산이 서로 눈싸움을 하고 있는데 희주가 첨벙첨벙 오더니
희주: 나 눈사람 만들어 줘. 어디에서 보니까 눈사람 대게 예쁘더라. 나는 눈 코 입 붙일테니까.
경석: 알았어. 눈사람 하면 내가 잘 만들지.
미연: 나도 눈덩이 굴려 올게.
효식: 희주야 너는 잘 걷지도 못하면서. 내가 나뭇가지 만들어 줄게.
범석: 그럼 나는 썰매를 한번 만들어 볼까?
희주: 아 휴 숨차. 눈 위를 걸어 다닐려니 숨도 차네요. 오라버니.
범석: 희주가 제일 좋아하는 것 같아. 기다려 봐. 내가 재미있고 편안하게 탈 수 있는 썰매를 만들어 볼테니.
영서: 그거 시간이 오래 걸리는 것 아닌가요?
범석: 최선을 다해 가장 빠른 썰매를 만들거야. 기다리지 않게. 금방 가서 만들어 올거니까 놀고들 있으라고. 할아버지께 여쭤보고.
범석은 어르신을 찾으며 집 안으로 들어간다.
어르신은 범석의 부르는 소리에 방 안에서 나오시며 범석의 말하는 것을 자세히 들으신다.
그러고는 집 뒷 마당쪽으로 가시면서 따라오라 손짓하신다.
범석은 어르신의 손짓을 보고 조용히 따라간다.
그리고 어르신은 뒷마당 헛간으로 들어가시더니 썰매모양의 나무를 갖고 나오신다.
범석은 반갑게 뛰어가며 “어르신 썰매가 있네요.” 한다.
어르신은 “하두 안 타서 여기에 넣어놔서 녹이 슬었는데 자네가 한번 잘 닦아 써 보겠나?”
범석은 “네. 어르신.”
범석은 어르신이 주신 썰매를 갖고 나오면서 헝겊으로 깨끗이 날을 닦는다.
효식: 오빠 언제 이렇게 빨리 만들었어? 이건 보통 솜씨가 아닌데.
미연: 희주 생각에 시간을 초월하신 것이지.
희주: 아 멋있다. 나 빨리 썰매 타게 해 줘요.
미연: 너 눈사람은 다 그렸어?
희주: 강산이하고 경석이가 잘 하고 있지.
효식: 나는 영서 있는 곳으로 가야겠다. 미연아 너는 희주랑 같이 썰매 타려고 하지?
미연: 응. 나도 썰매 타려고. 범석 오라버니 저쪽 언덕까지 같이 가 줘요. 희주가 저기까지 가려면 아마 오늘 꼬박 세워도 모자랄 것 같아요. 이 눈길 가기도 벅찬데 저 언덕까지 올라가려면 말이에요.
희주는 범석의 도움으로 천천히 눈 위를 밟으며 언덕을 힘차게 올라간다.
미연: 오라버니 희주 먼저 썰매 주세요. 어떻게 타야 할지 잘 설명해 주시고요.
미연은 저쪽으로 가서 눈위에서 미끄럼을 타려고 한다.
범석은 희주에게 썰매 타는 것을 가르치며 썰매위에 앉힌다. 희주 등 뒤에서 희주를 밀어낸다. 언덕의 미끄럼길위에 희주가 ‘아~ 아~’ 크게 소리를 치며 미끄럼을 내려오듯 언덕위에서 미끄러지는데 어이쿠 이런. 앞으로 코 방아를 치며 엎어지게 된다. “아이 차가워. 얼굴이 시러워요.” ‘푸푸’하며 얼굴에 묻은 눈을 떨어낸다.
범석은 어린아이 같이 귀여운 희주의 얼굴을 살살 닦아준다.
희주: 오라버니 일부러 나 쎄게 밀었죠. 나 넘어지라고~
범석: 내가 그럴 리가.
희주: 나 또 썰매 밀어줘요. 재미 있어요.
범석: 또 넘어지고 나에게 책임 물으려고 그러나.
희주: 아니요. 이젠 잘 아니까 안 넘어질거에요. 어 이 썰매 진짜 재미있어요.
미연: 희주야 내 차례야. 어서 올라오기나 해.
강산은 눈사람을 다 완성하고 영서가 어디있나 사방을 살펴본다.
영서가 보이지 않는다. 강산은 영서가 보이지 않아 웬지 걱정이 앞선다.
“영서가 어디로 갔지. 멀리 가면 안 되는데.” 사방을 두리번 거리며 첨벙 첨벙 눈위를 걸으며 영서를 찾는다.
이리저리 찾아도 보이지 않아 “영서야 어디있어?” 소리쳐 부른다.
“영서야~” 몇 번을 불러도 아무런 응답이 없자 초조해 지기 시작한다.
“영서야~~~”
영서는 강산의 부르는 소리를 듣고 “ 응, 나 여기 있어.” 소리쳐도 말이 크게 나오지 않는다.
그리고는 힘없이 몸에 기운이 빠지는 것 같다.
“ 나 여기 있는데~. ”
영서는 나무 주위를 돌다가 나무 옆 웅덩이에 빠졌는데 조금 깊은 듯한 웅덩이였다. 나무 뿌리가 다 보였다. 그 뿌리에 다리가 긁히기도 했는데 눈으로 덮여서 웅덩이가 있는 줄 몰랐다.
잠시 힘을 잃고 잠이 들것 같았는데 꿈에 엄마의 환한 미소가 보인다. 영서는 ‘엄마’하면서 불러본다. 엄마는 계속 웃으면서 ‘어서 일어나야지. 너 때문에 많은 사람이 걱정하면 어떡해. 자 어서 일어나!’ 하면서 손을 내미신다. 영서는 새눈을 뜨면서 ‘엄마 언제 여기 왔어요. 나 여기 있는 줄 어떻게 알고.’ 하면서 엄마 손을 잡고 몸을 일으킨다. 눈을 크게 뜨니 아무도 없었다.
밖에서 영서를 부르는 강산의 소리가 들려온다. 영서는 강산을 부를까 말까 망설인다. 강산이 웅덩이 파인 곳을 발견하고 그 밑을 내려본다. 영서가 나무 뿌리 밑에 기대어 서 있는 것을 보고 크게 소리친다.
강산: 영서야 너 거기서 뭐해. 얼른 올라오지 않고.
영서: 응. 나갈거야. 그런데 나는 나무를 탈 줄 몰라.
강산: 너 일부러 거기 숨은 거야. 나 약 올리려고. 그것 봐 내려갈땐 신나게 내려갔어도 올라올땐 힘들지. 내가 도와 줄게.
영서: 그렇게 생각해? 내가 너 약 올리려고 했다고? 그렇게 생각한다면 그런거지.
알았어 내가 알아서 나갈테니 걱정하지 말고 너 먼저 가 있어.
강산: 내가 너를 그렇게 찾아 불렀는데도 아무 대답이 없으니 당연히 그렇게 생각하지.
영서: 그게 아닌데. 나도 모르게 이렇게 되어 버렸는데. 너는 참, 말도 쉽게 한다.
강산: 지금은 나의 도움이 절실히 필요할때야. 너 계속 버탱기고 있으려면 그렇게 하고. 어때 내 도움 필요하지?
자~ 내 손 잡아. 지난번처럼 다른 말 하지 말고.
강산은 나무를 잡고 팔을 쭉 뻗어 영서에게 손을 내민다. 영서는 조심스레 강산의 손을 잡고 나무 뿌리를 타고 올라온다.
강산: 네가 나무 주위를 하두 재미있게 돌아서 나는 눈사람 만들어 놓으려 했는데, 그새 못 견디고 장난을 치고 그래.
영서: 장난 아니야.
강산: 저쪽에 눈사람 예쁘게 만들어 놨어. 가서 한 번 봐봐. 네가 준 파란 장갑과 목도리 눈사람에게 잘 어울려. (지난번 놀이공원에서 잊어버린 파란 목도리를 생각하고 사 놓았다가 영서가 선물한 것이라고 말한다.)
영서: 빨간색이었는데 내가 준비한 것은. 그것은 아마...
강산: 하여간 빨리 가서 봐봐.
강산이 영서를 붙잡고 눈사람 있는 곳으로 간다.
영서는 조금 몸이 아픈 듯 불편했지만 강산의 당기는 손에 의지하여 눈사람 있는 곳까지 간다.
영서: 어 정말 예쁘다. 혼자 만들었어?
강산: 경석이가 만든 것은 저기 있잖아. 너라고 생각해. 가만있어봐. 여기 코가 조금 넓적하게 해야 하나? (영서의 코를 손가락으로 재 본다.)